07/11/23 아 5-8장, “8장 사랑은...” Publish on July 12,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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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아가서 8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아가서 두 번째 묵상이면서, 마지막 묵상입니다.
아가서를 두 번밖에 묵상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복음의 진수를 발견하게 되는, 금광과도 같은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I. 술람미 여인의 호칭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어떻게 호칭하는지를 살펴보면, 그가 신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아가서에는 술람미 여인에 대한 다양한 호칭이 등장하는데요.
- 친구들은 술람미 여인을 가리켜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아3:6)',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아6:10)', '귀한 자의 딸(아7:1)' 등으로 불렀습니다.
- 술람미 여인도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샤론의 수선화,'골짜기의 백합화'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 신랑도 그녀를 일컬어 '바로의 병거의 준마(아1:9)'나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아2:2)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직접적으로 호칭하는 표현이겠지요.
크게 7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결혼 전에 불렀던 호칭은 3가지입니다.)
첫째, '나의 사랑'입니다(아1:9, 15, 2:10, 13, 4:1, 7, 5:2, 6:4).
원래 히브리어는 친구, 동무라는 뜻인데, 영어로 표현하면, “자기야(my darling)”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나의 어여쁜 자'라고 불렀습니다(아2:10,13).
나의 아름다운 자(my beautiful one)라는 뜻입니다.
셋째, ‘나의 비둘기(my dove)’입니다(1:15, 4:1, 5:12).
당시에 비둘기는 순결을 상징했고, 비둘기의 눈은 맑고 깨끗한 것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눈이 그만큼 맑아서,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결혼 후에 불린 호칭은 4가지입니다.)
넷째, 그녀를 '나의 신부(my bride)'입니다(4:8, 9, 10, 11, 12, 5:1).
두 사람이 결혼했기 때문에, 정식으로 신부가 된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신부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다섯째,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나의 누이[여동생](my sister)'이라는 애칭으로도 자주 불렀습니다(아4:9, 10, 12, 5:1, 2).
때론 신부로, 때론 여동생으로 부르는 관계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불리셨습니다(요 3:16).
그런데 나중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불렀고(롬 8:29, 히 1:6),
맏형님 되신 예수님이 우리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히 2:11).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이면서, 주인이면서, 동시에 맏형님 되신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여섯째, 신랑은 신부를 '나의 완전한 자(my flawless one)'라고 불렀습니다(아5:2, 6:9).
객관적으로 본다면, 신부는 햇볕에 그을리는 등, 여인으로서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보기엔 완벽하게 훌륭한 여인이었습니다.
일곱째, '동산에 거주하는 자'이다(아8:13).
이것은 한번만 나오는 표현이지만 가장 강력한 표현입니다.
왕과 신부가 들어가는 비밀 동산, private garden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여인이 술람미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성에 거하는 환상을 생각나게 합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여러 가지 호칭으로 술람미 여인을 부르는 것은, 그만큼 이 여인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측면을 표현하기 위해, 그때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표현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관점에서 아가서의 사랑을 더 깊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II. 아가서의 사랑
(아 8:6)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 8:7)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서는 솔로몬, 술람미, 친구들의 합창이 함께 나오는 뮤지컬과 같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 부분이 누구의 대사인지를 잘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6-7절은 술람미 여인이 대사하는 부분입니다.
이 구절에는 사랑이, 아가서가 추구하는 사랑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1. 사랑의 확실성
(아 8:6)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당시 사람들은 도장을 늘 가지고 다녔습니다.
요즘 우리는 문서에 싸인을 하거나, 전자서명(e-sign)을 하지만, 예전에는 도장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서 창녀처럼 변장한 다말이 유다와 하룻밤을 지낸 후에, 그 증표로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받았잖아요(창 38장).
당시에 도장은 소유자의 신분과 권리를 나타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반지형 도장을 손가락에 끼거나(창 41:42), 원통형 도장을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신부는 신랑이 늘 도장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도 가지고 다녀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부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지만, 신랑도 동일한 소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신랑도 늘 신부가 자기를 생각해주길 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으라 이스라엘(쉐마 이스라엘)”이라 하셨던 구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하시면서, 마음에 새기고, 손목에 매고, 미간에도 붙이라 하셨던...
(신 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의 고백은 성도가 예수님에게 “우리와 항상 동행해 주십시오.”라는 요청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인환아, 나는 늘 너와 함께하길 원한다. 나에 대한 사랑을 네 가슴에 늘 품어주렴.”
오늘도 예수님을 제 가슴에 품고, 잊지 않고 살려고 애쓰길 원합니다.
2. 사랑의 힘
(아 8:6)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이 구절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음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겨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든 죽음과 싸워 이길 수 없고, 누구든 언젠가는 무덤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죽음(무덤)이었고,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죽음(무덤)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고, 죄의 결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런데, 예수님 이후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는데, 얼마나 사랑하셨냐하면 죽음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구절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우리 대신 죽어주셨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을 이기신 분”이시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이 노래했던 사랑이 “죽음처럼 강한 사랑”이었다면,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죽음보다 강한 교회이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 아멘!
3. 사랑의 가치
(아 8:7)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사랑은 사람이 전 재산을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사랑이라고 노래 구절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랑에 대해 이렇게 감탄하며 말합니다.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 사랑에 값을 매길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귀중하기에, 그 사랑받는 자도 귀하게 만듭니다.
왕의 사랑을 받기에, 술람미 여인도 귀중한 존재가 되었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짜리”란 표현이 다시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예수님 핏값으로 사셨으니, 우리의 가치는 예수님짜리라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단지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을 더욱 묵상하게 됩니다.
묵상할수록 요 3:16이 더욱 떠오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귀히 여기고,
예수님 사랑으로 구원받는 나 자신도 더욱 귀히 여기고,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섬기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3LyJ0eRd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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