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4/23 시 70~72편, “71편 소망의 노래” > 묵상편지

본문 바로가기

묵상편지

06/14/23 시 70~72편, “71편 소망의 노래” Publish on June 14,2023 | 관리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24회 작성일 23-06-14 12:21

본문

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시편 71편을 묵상하겠습니다.


I. 71편을 처음 읽으면, 몇 가지 눈에 띄는 것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1) 71은 표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시라고 여겨집니다. 

70편과 71편이 연관이 있는데, 70편에 다윗의 시라고 밝혔기 때문에, 71편에는 굳이 표제를 달지 않은 것 같습니다.


2) 또한, 71편은 다윗이 노년에 기록한 것 같습니다. 

다른 시에 비해, 늙을 때, 쇠약할 때(9절), 늙어 백발이 될 때(18절) 같은 표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3) 또한 6절은 다윗이 모태신앙(?)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 사오니(시 71:6)”라고 하고 있습니다. 

  

II. 71편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오늘 제게 다가오는 주제는 “소망”입니다. 

시편 71편의 상황은 매우 어렵고 힘들어 보입니다. 

1절은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시 71:1).”라고 시작합니다.

또한, 12절은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 71:12)”라고 합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속히”라고 했겠습니까? 

그만큼 상황이 매우 급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중에도 시인은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시인은 어떻게 소망을 품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것은, 주님은 피할 바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71: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시편 기자는 그의 원수들이 그를 찾아 죽이려고 할 때마다 “항상(always”) 그의 반석과 요새 되시는 주님께 피했습니다.

3절은 비슷한 단어인 바위와 반석을 반복합니다. 

이 바위나 반석은 돌덩이 정도가 아니라, 절벽(cliff)같이 아주 큰 바위(rock)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작은 바위라면 흔들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집채보다 큰 바위는 크고 견고하므로, 믿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특히 “거할 바위”라는 표현은 다윗에게 의미가 깊습니다.

지금 다윗은 히브리어로 word play를 하고 있습니다.

“거할 바위”를 히브리어로 하면 [츄르 마온]인데요.

[츄르]는 “강력한(strong)”이고, [마온]은 “도움(help)”이나 “숨겨진 굴(hidden den), 거주지 (dwelling)”란 뜻입니다.

직역하면, 강한 동굴이나 강한 거주지인데, 한국어에는 이런 표현이 없잖아요. 

그래서 개역 성경에서는 거할 바위로 의역한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온]은 “마온 황무지” 할 때 “마온(고유명사)”과 같은 단어란 것입니다.

즉 [츄르 마온]은 “마온 황무지의 바위나 동굴”을 즉각적으로 연상시킵니다. 


“마온 황무지”는 삼상 23장에 나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헤브론 동쪽에 있는 십 황무지에 숨어 있었는데, 밀고를 당합니다. 

마온 황무지 바위틈으로 도망갔는데, 거기까지 추격을 당했습니다. 

더 갈 데도 없고, 숨을 데도 없었습니다.

발각되기만 기다리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제 사울이 한 걸음만 더 오면 다윗이 잡힐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블레셋이 쳐들어온다는 매우 급한 소식을 전하게 하셨고, 사울은 다잡은 다윗을 두고 물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이 그 위기를 벗어난 후에 그곳 이름을 “셀라하마느곳(분리의 바위)”이라 불렀습 니다(삼상 23:28). 

자세히 분해하면, “셀라(바위) 하(정관사) 마느곳(분리, 나눔)”입니다.

The rock of divisions (the rock of escape)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마온 광야의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건을 평생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노년에 찬양하면서도 원수들의 핍박과 고난 속에서 마음이 요동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이 내가 거할 반석(마온의 반석)이시기” 때문이고, “내가 바위 되시는 주님께 피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1) 신앙의 체험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나면, 그것이 나를 붙들어주는 귀한 도구가 됩니다.

다윗도 마온의 바위를 체험했기 때문에, 평생 동안 반석 되신 하나님을 생생히 붙들 수 있었습니다.


2) 여기에서 또 하나 생각할 것은, 그 체험은 대부분 위기 상황에서 경험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지 않았다면, 마온 광야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리지 않았다면, 마온의 반석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도저히 사울에게서 도망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었을 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분리해 주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 “하나님, 좀 더 편하게 살면 안 될까요?”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어떤 상황을 겪을 때도 그렇고, 우리 BCPC 식구들을 위해 중보기도 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묵상을 하면서, “위기는 변장된 기회이다”란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위기는 하나님이 축복 주시는 통로입니다.

모든 고통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고통과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을 바꾸어야겠습니다. 

고통이 다가오면, 이번 고통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지 기대하겠다고, 그 구원을 소망하겠다고 마음먹어야겠습니다.

물론 한 번에 되진 않겠지요.

하지만, 반복해서 마음을 바꾸다 보면, 언젠간 제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아, 하나님을 소망하기 원합니다.

고통 속에 있을 때, 더욱 예수님을 소망하기 원합니다.

설령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으로 인해 더 큰 소망을 붙들기 원합니다.

주여! 어려움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바꾸게 하시고, 환란을 통해 주님을 체험하고, 구원을 체험할 것을 더욱 소망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굳건한 반석위에 우뚝 서게 해 주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46yBlnmR7Dw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