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0/23 시 104-106편, “104편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Publish on June 2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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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104편을 묵상하겠습니다.
시편 103편과 104편은 일종의 시리즈 시편입니다.
103편은 전편, 104편은 후편인 셈입니다.
시편 103편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로 시작해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로 마무리되는데, 104편도 동일합니다.
또한, 문체도 비슷하고요.
하나님의 은총과 주권을 강조하는 내용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103편의 내용은 역사에 집중하고 있고, 104편은 자연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I. 하나님은 자연과 인간을 만드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새벽에 박 목사님이 설교하셨듯이, 104편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반영하고 있습 니다.
104편에서 노래하는 순서는 창조 순서와 비슷합니다.
1) 하나님은 자연을 만드신 창조주입니다.
5절- 땅의 기초를 하나님이 만드셨고,
6절- 땅과 물의 경계선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8절- 산이 솟아오르고, 골짜기가 내려간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10절-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2) 하나님은 짐승들도 돌보십니다.
16절부터 보면 새들과 너구리와 사자 등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손에서 필요한 것을 얻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때를 따라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생명을 불러 가시면, 만물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자연은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일터입니다.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지되고, 결국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3)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을 돌보십니다.
(시 104:14)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시인은 노래하길, 땅에서 채소와 식물이 나고, 우리가 그것을 먹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라고 합니다.
농경시대에 이렇게 노래했다면, 산업시대인 지금은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요?
현대 버전으로 바꾼다면, “그가 애플로 아이폰을 만들게 하시고, 우리로 아마존에서 쇼핑하게 하시고, 페이스북에서 소통하게 하시고…” 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우리는 회사나 사업장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껏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나 사업장이 우리 때문에 운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일하셔서 이루어지는 것들이요, 하나님의 지혜의 결과물들 입니다.
24절이 노래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시 104:24)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그렇습니다.
제가 태어난 것도, 지금 사역하고 설교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하심의 결과물들임을 고백합니다.
II. 그러면, 하나님에게서 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할 일은 무엇일까요?
(시 104:33)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시 104:34)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하리로다.
33절은 노래와 찬양을 말합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노래는 singing을 의미하고, 찬양은 singing과 playing in instrument에 다 쓰일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성악이냐 연주냐를 따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할 일은 그 생명이 있는 날 동안 창조주 하나님을 찬미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노래하며 찬양하는 것이 인간의 삶의 목적입니다.
이사야서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43:21)”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찬양은 단순히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찬양은 마음가짐이요, 인생이요, 태도요, 살아가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찬양하고, 삶으로 찬양하고, 인생으로 노래하는 것이 진정한 찬양입니다.
34절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May) being sweet for him is my babbling, and I will rejoice in YHWH.”
(나의 중얼거림이 그를 즐겁게 하기를 바라노라. 그리고 나는 야훼를 즐거워할 것이다.)
babbling(중얼거림)은 묵상할 때 중얼거립니다.
물론 기도할 때도 중얼거립니다.
그래서 한글 개역은 “묵상”으로 번역했고, 개역 개정은 “기도”로 번역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찬양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에서는 인간의 목적이 찬양이라고 했고, 소요리문답은 인간의 목적이 영광과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언제 제일 행복할까요?
어떻게 해야 오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기계가 제 목적에 맞게 사용될 때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듯이, 저도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에 맞게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하겠지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살 때,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요.
하나님을 칭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감탄하며 살 때 가장 행복 하게 살 수 있겠지요.
생각해보면, 찬양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운행하시는 것도 찬양해야겠고,
오늘 제 인생을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것도 찬양해야겠습니다.
지난 통독 리더 부부 수련회에서 찬양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목이 쉬어라 찬양하고, 기도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찬양할 수 있을 때 더욱 열심히 찬양해야겠습니다.
노래로 찬양할 뿐 아니라, 삶으로도, 고백으로도 찬양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찬양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체험함으로 더욱 기뻐하며 찬양 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ToU4fzyI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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