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7/23 느 3~4장, "성벽 재건" Publish on May 08,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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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오늘은 느헤미야 3장을 묵상하겠습니다.
3장에서 드디어 성벽 재건 공사가 시작됩니다.
주변 이방인들의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기 시작됩니다.
성벽은 52일 만에 재건되는데요.
3장에서 시작해서 6장에서 완공됩니다.
사실 성벽 재건하는 이야기는 읽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누구가 무슨 문을 건축하고, 누구는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하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모르는 사람들 이름도 많이 나오고, 익숙치 않은 건축 용어도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성벽 그림을 옆에 놓고 읽으면, 훨씬 도움이 됩니다(링크의 그림 참고).
느헤미야는 성벽을 길쭉한 모양으로 재건했습니다.
(나중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왼쪽(서쪽)으로 성이 확장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는 거의 사각형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습니다.)
공사는 시계 반대 방향(반시계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양문(3:1절, 가장 북쪽)에서 시작해서→ 어문(3, 서쪽 성벽) → 옛문(6) → 골짜기문(13) → 분문(14, 가장 남쪽) → 샘문(15, 동쪽 성벽) → 수문(26) → 마문(28) → 다시 양문(32절) 에서 마치는 순서로 공사를 했습니다
3장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 2개가 있는데요.
1. 하나는 중수했다는 단어입니다.
“중수”가 3장에 39번이나 나옵니다.
아마 한국 사람같으면, “빨리”가 가장 먼저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중수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중수는 “강하고, 견고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느헤미야가 52일 동안 성을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나 빨리, 성을 만드느냐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크게 만드냐에도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강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성경은 속도나 규모가 아니라, 중수하는데에 더 신경쓰고 있습니다.
저도 주님의 교회를 이뤄가면서, 교회를 “중수”하는데 더욱 집중해야 겠습니다.
3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다른 단어는 “그 다음은”입니다.
이것도 22번이나 나옵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그 다음은 누구, 그 다음은 누구, 그 다음은 누구... 하는 식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사할 때, 여러 사람이 역할을 골고루 분담했습니다.
건축자들 명단에 보면, 직업이 다양합니다. 대제사장, 레위인, 느디님 사람들, 금장색, 상고...
70명 이상의 사람들 이름이 나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부분씩 골고루 맡아서 건축했습니다.
나 혼자 일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일하는 것은 더 좋습니다. 아니, 더욱 성경적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달란트있는 분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동역자로 세워나가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내가 일하지 못할 경우에는, 일하는 분들에게 찾아가서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가 함께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바울이 교회를 몸에 비유했듯이, 한 몸 되고,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일꾼들이 있는데요.
1) 여리고 사람들(3:2)과 드고아 사람들(3:5), 기브온과 미스바 사람들(3:7)입니다. 여리고 는 예루살렘 동쪽 지역이고, 드고아는 예루살렘 남쪽, 기브온과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 지역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밖에 사는 사람들, 지방에 사는 사람들 도 다 같이 모여서 성을 재건하는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2) 살룸의 딸들(3:12)입니다. 그들은 여자의 몸으로 힘든 건축 노동에 동참해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남녀 구분이 없습니다.
아니, 사실 요즘 보면, 자매님들이 더 열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3) 삽배의 아들 바룩입니다(3:20).
바룩은 제사장입니다(10:6, 8),
제사장은 양문(북쪽 성벽) 건축을 담당했습니다(3:1).
그런데, 바룩은 기본으로 맡은 일 외에 하나를 더 맡습니다. 샘문과 수문 사이, 동쪽 성벽 일부를 “힘써(zealously)” 중수했습니다.
그가 원래 맡은 부분에서 열정적으로 일해서 빨리 끝내고, 다른 부분도 맡아서 건축했단 말입니다.
즉, 두 배로 일했습니다.
이 충성된 종이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시원케 했을지, 기쁘시게 했을지 상상케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헌신과 땀으로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하신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의 충성을 사용하여 주님 일을 이루어 가십 니다.
4) 가장 눈이 가는 사람은 “느디님 사람들”입니다.
느디님은 오직 역대상 9장 포로귀환민 명단과 에스라, 느헤이먀에만 등장합니다.
느디님은 “주어진 사람들”이란 뜻인데요.
“성전 막일꾼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민 31:30에 보면, 하나님이 전쟁 포로 중에 일부를 레위인에게 주는 제도를 만드셨는데요.
수 9:27에서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 중 일부를 성막에서 나무를 패고 물긷는 자로 삼았 습니다.
그러므로, 느디님 사람들은 “전쟁포로 가운데 레위인들을 보조하여, 성전에서 허드렛일 하도록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쉽게 말해, 성전에서 일하는 종(temple servants)입니다.
즉, 느디님은 이방인들로서, 종이었고, 최하층민입니다.
이들은 포로에서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귀환민들과 동일하게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비전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고, 성전과 성벽 공사에 열심히 동참했습니다.
결국, 포로귀환 명단에 제사장과 레위인 다음으로 소개될 정도로 나름의 위치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이들이 “이방인”이란 것입니다.
지금 느헤미야는 이방인들과 협력해서 성벽을 세우는 것을 거부했고, 이방인들과 결혼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느헤미야가 편협한 인종주의자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느디님도 이방인이잖아요.
어떻게 이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부로 수용되고, 공사에도 동참하고 있단 말입 니까?
느디님의 존재는 느헤미야가 인종주의자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신앙의 여부”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으면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열방을 품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포로귀환의 상황에서도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후대의 유대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고, 예수님 시대로 내려오면 극심한 인종주의로 치닫게 되지요.)
혹시 내 마음속엔 편 가르기가 없는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구분하는 마음은 없는지, 외모나 인종에 대한 선입견은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특히 사람들의 외모나 옷차림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기 쉬운데, 그런 일은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닮으려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실 나 자신만 생각하고, 내 주변만 돌아보는 게, 가장 편하고 쉽습니다.
언어와 인종과 문화 너머로, 좁게는 내 인간관계 너머로 나가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고, 귀찮습니다. (주님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그러나, 하나님 마음이 거기에 계신다면, 주님이 그것을 원하신다면, 저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주님, 제 마음을 열어주소서.
저의 이기적이고, 죄악된 모습을 회개합니다.
제 주변에 있는 열방을 보게 하시고, 그 열방을 품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해 주시옵 소서.
지금 비록 집안에 거하고 있지만, 열방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비전을 품게 하시고, 지금 코로나로 고통 받는 열방을 보게 하시고, 그 땅을 섬기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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