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3/23 왕하 18~20장 “히스기야의 성전 기도”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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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4/13/23 왕하 18~20장 “히스기야의 성전 기도” Publish on April 13,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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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00회 작성일 23-04-13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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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왕하 19장, 히스기야가 기도하는 장면을 묵상하겠습니다.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13대 왕입니다(BC 715-686).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때, 남 유다 왕이었습니다.

이때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25세에 왕으로 등극할 때, 남 유다도 우상 숭배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친 아하스 왕은 성전 기구를 우상 숭배의 도구로 사용할 정도로 악한 왕이었 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남 유다에서 가장 선한 왕 중 한 명입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를 가장 선한 왕으로 꼽습니다.

“(왕하 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성전 청결케 했고 (대하 29:1) 유월절을 시행했고, 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크게 두 번 기도 응답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하나는 앗수르의 산헤립이 침공했을 때,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이사야를 통해 응답받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 18만 5천 군사를 전멸시켰습니다. 

두 번째 기도는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기도하여, 15년 생명 연장을 받았습니다. 

응답의 증표로 일영표가 뒤로 10도 물러나는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벨론 사자들에게 보물창고 보여 준 것을 책망 받았을 때의 태도입니다.

선지자는 이 일로 인해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황하 20: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다른 하나는 가장 선한 왕의 아들이 가장 악한 왕이란 것입니다.

그의 아들 므낫세는 남 유다가 심판 당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왕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범죄 때문에 남 유다를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왕하 24:3-4).

그런데 하필 므낫세가 태어난 시점이 히스기야가 15년 생명 연장 받은 기간이었습니다. 

이 보너스의 생명을 늦둥이의 신앙 교육에 집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 유다에서 가장 신실하고, 선한 왕이었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해서 응답받은 사건이 두 번 있었는데요.

한번은 앗수르를 물리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연장 받은 사건입니다.

오늘은 성전에서 기도하여 앗수르를 물리친 장면을 묵상해 보려 합니다.

19장은 BC 701년에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침공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시기에 예루살렘은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군대에 의해 완전히 포위당했습니다. 

“(왕하 18:13) 히스기야 왕 십사 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온 나라가 앗수르 제국에게 침략을 당했고, 겨우 예루살렘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앗수르왕 산헤립은 랍사게를 보내어,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요구가 얼마나 대담하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투인지, 듣고 있으면 가슴이 벌렁 벌렁할 지경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할 거라고 하는 히스기야의 말은 거짓말이라 했습니다. 

세상 그 누가 앗수르와 싸워서 이긴 적이 있냐고, 너희보다 더 큰 나라들도 다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넘치는 자신감에, 막강한 군사력에, 정확한 자료까지 들이밀고 있습니다. 


위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 귀퉁이에 있는 작은 약소국가잖아요?

그런데 앗수르는 당시 세상을 주름잡는 대제국입니다.

남 유다보다 강했던 북이스라엘도 20년 전에 앗수르에게 망했습니다.

지금 남 유다도 이제 나라가 거의 정복되었고, 예루살렘 성만 겨우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당장 눈앞에 18만 5000명의 군사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도 소망이 없고, 함락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항복하라고 보낸 편지를 들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랍사게가 항복하라고 위협하며 소리를 높였을 때, 세상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당장 비상 회의를 열고, 다른 나라에 편지를 보내고, 군대를 요청하고, 가능한 모든 대책을 마련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편지를 주님께 보이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히스기야만 당하는 위기는 아닙니다.

사실, 우리도 매일 이런저런 어려움을 경험하며 살고 있잖아요?  

위기를 맞았을 때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임을 다시 생각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 제목’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막다른 골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자리’만 있을 뿐이다.” 

저도 더욱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1. 그는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왕하 19: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 하나님께 적군이 보낸 편지를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왕하 19: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3.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왕하 19:15)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왕하 19: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


히스기야의 기도에 보면, 자기 신세 한탄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자기가 욕먹는 것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비방 받는 것을 통탄하고 있습니다. 

적군이 하나님을 비하한 것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당하는 것을 통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커녕, 적군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을 막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래서 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받는 것이 괴롭습니다.’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9절에서 구원해 달라는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왕하 19: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 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하나님, 지금 내 인생을 구원해 주셔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구원해 주세요”라고 기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구원을 베푸심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온 천하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라고 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나”의 패망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더 관심 있습니다. 

그분이 나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을 더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의 중심에 정말로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인생의 고난과 실패와 위기가 닥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아, 내가 끝장나나? 나는 괴롭다. 나는 이제 어떡하지?’

나, 나, 나 하곤 합니다. 

인생의 주어가 “나”가 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도, “저를 도와주시고, 저를 구원해 주시고…….”

기도의 목적어가 “나”가 됩니다. 


그러나 이제 제 기도의 내용을 바꾸기 원합니다.

나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까 걱정하고,

내가 욕먹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욕먹는 게 분하고,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것을 바라는 기도자가 되기 원합니다. 


4. 이사야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왕하 19:4)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히스기야가 위기에서 기도하러 갈 때, 그는 혼자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순간에 이사야와 함께 공동의 기도 제목으로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가 위기를 극복한 또 다른 비결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와 이사야가 합심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셨고, 그 기도 소리를 들으셨 습니다.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밤에 18만 5000명의 군사가 멸절 당했고, 

산헤립 왕은 갈고리로 코를 꿰어 당기듯이, 입에 재갈을 물려 당기듯이, 퇴각하게 하셨습 니다. 

결국 고국에서 칼에 암살당해 죽었습니다. 


저는 주로 혼자 기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기도 제목을 나누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문제가 생길 때 혼자 끙끙대지 말고, 중보기도를 요청하려고 노력해야 겠습니다.

함께 기도하여, 더 큰 기도의 힘을 경험하기 소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RuE0P-M9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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