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4/23 왕하 21-25장, “요시야 왕의 개혁”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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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4/14/23 왕하 21-25장, “요시야 왕의 개혁” Publish on April 14,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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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56회 작성일 23-04-1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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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왕하 23장 요시야 왕의 개혁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요시야(뜻: 여호와가 도우신다)는 남유다 왕국의 16대 왕입니다.

8세에 왕위에 올라 31년간 통치했습니다(BC 642-609).

그는 증조부 히스기야와 함께 남유다에서 가장 선한 왕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그 조상 다윗의 길을 본받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16살 때부터 종교개혁을 시행했습니다.

남 유다에 우상과 산당을 없앴고, 성전을 청결케 했습니다. 

300여 년 전,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을 때, 한 선지자가 나타나서 요시야라는 왕이 나타나 유대 종교를 깨끗이 개혁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요. 

드디어 그 요시야가 등장했습니다.

(왕상 13:2)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요시야 왕은 바알과 아세라 제단을 모두 허물었고, 그 제사장들의 뼈까지도 파내어 그 제단 위에서 태웠습니다. 

예언이 실제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대하게 유월절을 지켰습니다(왕하 23:22)

종교 개혁은 단지 남 유다에만 제한되지 않았고, 멸망한 북왕국의 영토에서도 이루어 졌습니다.

남북 이스라엘을 아우르는 전국적인 종교개혁과 부흥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므깃도에서 바로 느고와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그의 개혁운동으로도 망해가는 나라의 운명을 되돌리진 못했습니다.

요시야 이후에는 나라가 급격하게 쇠퇴했고, 막내아들 시드기야(20대왕) 때에 결국 멸망 하게 되었습니다(BC 586).


시대적 배경

요시야는 므낫세(14대)의 손자이고, 아몬(15대)의 아들입니다.

그가 8세에 왕위에 오른 것은, 부친 아몬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암살당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므낫세는 남 유다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고, 아몬도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 당시 영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선지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요시야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가 나훔, 스바냐, 예레미야 선지자인데요.

스바냐는 예루살렘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습 3: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습 3:2)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습 3장에는 방백들, 재판장들, 선지자들, 제사장들 모두 타락했고, 백성들도 타락했다는 고발이 나옵니다.

스바냐와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닥칠 재난이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우상숭배자들은 재난에 대해 정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우상을 열심히 섬기지 않아서 재난이 왔다”고, “예전에 우상을 잘 섬겼을 때는 불행이 없었는데, 요시야가 종교개혁해서 불행이 찾아왔다”고 헛소리를 했습니다.

“(렘 44: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정녕히 실행하여 우리의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대저 그 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이런 메시지는 당시 남 유다가 영적으로 얼마나 타락해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2. 율법책 발견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동안은 너무 어렸고, 우상숭배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서, 개혁을 시행할 수가 없었습 니다.

통치 8년(16살)때부터 종교 개혁을 단행했는데요.

그런데 그가 종교 개혁을 의도하고 시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성전 수리를 시작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다가,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한 것입니다.

“(왕하 22: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그동안 얼마나 타락해 있었던지, 율법책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율법책을 찾아서 읽어보니,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왕이 율법을 들었고, 백성들에게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여호와에게 복종하겠다는 언약을 갱신합니다(왕하 23:1-3).

“(왕하 23:3)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왕 뿐 아니라, 남 유다 백성들도 말씀 앞에 서게 되었고, 언약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했습니다.

참된 신앙 개혁은 늘 말씀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합니다.

저는 주님과 어떤 관계에 서 있는지 돌아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사람 때문에, 감정 때문에 좌우되지 않는지 돌아봅니다.

오히려,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를 통해 주님과 교제하고, 삶속에서 주님을 왕으로 섬기며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가며 살도록 애써야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을 섬기는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3. 우상 제거

이후로 요시야는 대대적인 성전 청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므낫세 왕이 성전 뜰에 세웠던 일월성신의 제단과 제단 물품들을 불살랐고, 성전에 세워졌던 아세라 상도 불살랐고, 성전에 있던 매춘 시설도 헐어버렸습니다.

또한, 태양 숭배 의식을 행할 때 사용되었던 태양 수레도 불살랐고, 솔로몬 시대부터 있었던 아스다롯(시돈)과 그모스(모압)와 밀곰(암몬)같은 이방의 우상들도 다 제거 했습 니다.

주상들은 빻아버렸고, 석상들은 깨뜨렸고, 목상들은 찍어서 불태워 버렸습니다.


또한,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산당 제거로 이어졌습니다.

원래는 산당이 나쁜 곳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이스라엘은 성막뿐 아니라, 산당에서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을 처음 만난 곳도 산당에 제사지내러 가는 길이었습니다(삼상 9:14).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산당은 우상숭배 하는 곳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는 산당들과 거기에 세워져 있던 우상들을 제거했습니다.

“(왕하 23:15)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특히 벧엘의 산당을 제거했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벧엘은 원래 북 이스라엘 지역이었습니다.

요시야는 나라의 곳곳에서 청결작업을 단행한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보다 보이지 않는 우상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데 방해되는 것들은 다 우상입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과 성공에 대한 욕망과 육신의 쾌락 같은 것들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녀나 가족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한 번의 결심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유혹은 파도처럼 계속 몰려오기 때문에, 유혹과 지속적으로 싸우는 작업도 병행해야 합니다. 


4. 유월절

요시야는 우상을 척결한 후에, 통치 18년(26세)에 유월절을 대대적으로 시행했습니다.

“(왕하 23:23) 요시야 왕 십팔 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우상 타파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되는 장애물을 없애는 작업이라면, 유월절 준수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작업이었습니다. 

요시야는 전국에서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온 백성이 함께 유월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사사시대 이후로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왕하 23:22).

왕이 백성들을 위해 내놓은 제물만 해도 어린양과 어린 염소가 3만 마리, 수소가 3천 마리였습니다(대하 35:7). 

요시야는 하나님을 위해 자기 재산도 아낌없이 내어 드렸습니다. 


이렇게 요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왕이었습니다.

남 유다 왕 중에 가장 선한 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왕하 23: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요시야는 31년간의 통치 동안 변함없는 믿음을 가졌고, 실족한번 하지 않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시종일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비록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남유다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지만, 포로로 잡혀간 이들이 신앙위에 든든히 설수 있도록 영향을 미쳤습니다.

포로시대에 가장 위대한 신앙인중 한명이 다니엘인데요.

1차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이 믿음 위에 든든히 설수 있었던 이유를 역추적해 보면, 그의 부모가 요시야의 개혁을 통해 신앙이 부흥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가 신앙 개혁을 단행할 때가 BC 628인데, 다니엘이 1차 포로로 잡혀갈 때가 BC 605입니다.

즉 다니엘의 부모 시대에 요시야의 신앙 개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개혁한지 23년 후에, 다니엘이란 믿음의 청년이 등장했습니다.

성경에 다니엘의 부모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부모들이 신앙운동에서 변화 받았고, 몇 년 후에 다니엘을 낳았고, 신앙으로 양육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저도 흠 없는 신앙이 되려고 애써야겠습니다.

한결같은 신앙이 되려고 애써야겠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를 신앙의 자녀로 양육하기 위해 힘써야겠습니다.

다니엘 같은 믿음의 후손을 만들어 내는 소망을 품고 자녀를 양육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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