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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4/10/23 왕하 8-10장 “이세벨의 최후” Publish on April 10,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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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59회 작성일 23-04-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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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어제 부활절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롭고 감동적인 주일을 지냈습니다.

 

오늘은 왕하 9장 이세벨의 최후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서 오므리 왕조를 몰락시키고, 예후 왕조를 세우는 이야기의 일부분입니다.


1. 이세벨의 악행

아합은 오므리 왕조의 두 번째 왕이었고, 이세벨은 아합의 왕비였습니다. 

원래 이세벨은 시돈(페니키아) 왕 엣바알의 딸입니다. 

철저한 바알 숭배자였습니다. 

아합(북왕국의 7대왕)이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왕가의 결혼을 통해 두 나라가 평화를 만드는, 일종의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어긴 행위였습니다(왕상16:31). 

이세벨은 본인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긴 것은 물론이고, 아합도 바알의 숭배자가 되게 했습니다. 

아합이 악한 왕이 된 것은 이세벨의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온 북이스라엘을 우상을 섬기는 나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의 단을 쌓았고,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습니다(왕상 16:32-33). 

북이스라엘 멸망기에 활동했던 미가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이 아합 왕의 죄(바알 숭배)를 따르기 때문에 멸망당한다고 비판할 정도로, 아합의 바알 숭배는 극심했습니다(미 6:16).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을 헐고, 선지자들도 죽였습니다(왕상 19:10). 

이세벨은 엘리야도 죽이려 했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도 죽음의 공포에 치를 떨만큼 이세벨의 포악한 살인 행위는 잔인하고 대단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아합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은 나봇 사건 때문이었는데요. 

이 사건에서도 이세벨이 배경에 있었습니다. 

이세벨이 아합을 선동해서, 포도원을 강탈하게 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악행이었습니다. 


이세벨에게 빠져 살던 아합은 결국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었고, 이세벨은 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세벨은 자기 장남 아하시아(북 8대왕)와 차남 여호람(북 9대왕)을 차례로 왕으로 세우고 섭정을 했습니다. 


2. 이세벨의 최후

하나님은 악독하던 우상 숭배자 이세벨을 심판하셨습니다.

예후를 심판의 대행자로 세우셨습니다. 

예후는 반란과정에서 오므리 왕조의 남자들 (여호람과 70명의 아들들) 모두 처단하였습니다. 

이세벨은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표독스러웠습니다.

(왕하 9: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왕하 9: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가로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결국 이세벨은 창밖으로 던져 죽음을 당했습니다. 

개들이 그 시신을 먹어서, 해골과 손, 발만 남았습니다. 

결국 남은 시신마저 밭의 거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무섭도록 정확하게 실현되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가문은 그렇게 끝장이 났습니다. 


3. 묵상

1) (왕하 9:31)...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시므리(북 5대왕)’는 반란을 일으켜 엘라(북 4대왕)를 죽여서 바아사 왕조를 멸족시켰던 자입니다. 

그런데 시므리는 반란을 일으킨지 일주일 만에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반란자였습니다(왕상16:11-18). 

이것은 예후도 반역을 일으켰지만, 이렇게 처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경멸하고 저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세벨이 예후에게 이런 말 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시므리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왕을 죽인 사람이 바로 오므리(북 6대왕)였습니다. 

즉 자기가 앉아있는 왕비의 자리를 만들어준 오므리도 반란자였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반란자의 후손이면서도, 자기 가문의 더러운 모습은 싹 감추고, 예후만 반란자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끝까지 치졸하고, 악한 모습입니다.


저는 내로남불하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저는 혹시 저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남에겐 한없이 엄격한 모습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2) 심판의 예언의 성취

예전에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개들이 이세벨을 먹을 것이라 했습니다(왕상 21:20-24). 

그리고 지금 그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왕하 9:7)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심판을 철저하게 실행하셨고, 배교와 불신앙과 악행의 뿌리까지 뽑아버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이 하루아침에 성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아합에게 심판을 경고하셨는데, 예후를 통해 그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때로는 심판이 즉시 시행될 때도 있지만, 이번에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간 뒤에 실행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심판이 반드시 시행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경고하실 때 즉시 돌이키는 사람인지 돌아봅니다.

눈앞에 심판이 없다고 해서, 심판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진 않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기대를 더욱 확실히 가져야겠습니다.

정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악인의 형통

악인이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것은 악인의 형통에 대한 시각을 돌아보게 합니다.

때로는 이 땅에서 악인이 형통한 것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 나는 왜 이러냐고 한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언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잠 24: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악인이 이 땅에서 잠시 형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악인의 형통은 금방 끝이 나고, 죄인은 멸망합니다.


저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의인의 형통을 부러워해야 하겠습니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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