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3/23 삿 13~16장, “삼손” Publish on March 13,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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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은 삿 13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또다시 범죄의 악순환을 반복했고, 이번에는 블레셋에게 압제당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이미 삼갈 사사와 입다 사사 때에도 이스라엘을 괴롭힌 예가 있습니다(삿 3장, 10장).
그런데 지금은 40년간이나 압제당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이민족 지배 역사 중 가장 긴 기간입니다.
이때 등장한 사사가 삼손입니다.
삼손은 성경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입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삼손과 헤라클레스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죽이고, 당나귀 턱뼈로 삼천 명을 쳐 죽인 위대한 용사입니다.
머리가 깎여 힘을 빼앗겼지만, 나중에 마지막으로 힘을 얻어 우상 신전을 무너뜨리고 전사했습니다.
그의 출생도 신기합니다.
성경에서 수태고지를 받은 사람은 몇 없습니다.
예수님, 세례요한, 이삭 정도입니다.
쉽게 말해,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다윗도 수태고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수태고지를 받았습니다.
더욱이 태어나면서 평생 나실인으로 살았던 사람도 사무엘과 삼손밖에 없습니다.
삼손은 술 취해선 안 되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야 하고, 머리를 깎아서도 안 되었습니다.
1) 술은 취하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취한다는 것은 술에 충만해진다, 장악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지라고 했습니다(엡 5:18).
즉,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너에게는 이미 너를 장악하고, 주관하고 있는 주인이 있다”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2) 레위기에서 부정한 것은 거룩함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해지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이 부모의 주검이라도 가까이할 수 없었던 것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부정을 멀리하라는 것은 거룩함을 유지하고, 하나님과 친밀하여지라는 메시지입니다.
3) 머리를 깎지 말라는 것도 주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자가 머리에 수건(베일)을 쓰는 습관에 대해 언급했는데요(고전 11장).
머리를 기르거나 가리는 것은 주인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은 내가 주인이란 말입니다.
삼손이 머리를 깎지 말라고 한 것은 삼손에게 주인(대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삼손은 나실인(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으로서 평생 하나님의 수하에 있는 사람(하나님이 다스리는 사람)이란 메시지를 살아내야 하는 임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삼손은 대놓고 나실인의 규례를 어깁니다.
삼손은 이방 여인과 결혼은 당연히 금해야 할 것이지만, 삼손은 두 번이나 이방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술을 마셨고, 부정한 것을 먹었습니다.
급기야, 들릴라에게 머리카락의 비밀을 누설했고, 머리를 깎였습니다.
결국,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던 눈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인생의 하이라이트라면, 다군 신전을 무너뜨리고 3000명을 죽이며 같이 죽을 때일 것입니다.
그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삿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 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하고
마지막에조차도, 그가 갚으려 했던 원수가 개인적인 원수인지,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원수 인지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원수가 이스라엘의 원수였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블레셋과 싸우며 죽었고, 큰 전과를 세웠습니다.
묵상
1. 삼손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보기에 좋은 대로 행했습니다.
(삿 14:3)…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를 직역하면, “그 여자가 내 눈에 보기 좋사오니”란 말입 니다.
삼손이 가사에 갔을 때도,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습니다(삿 16:1).
사사기 사람들은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21:25).”라고 했는데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도 직역하면, “자기 눈에 좋은 대로”란 말입니다.
지금 사사 삼손도 다른 사사기 사람들과 똑같이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살고 있습니다.
완전히 자기가 보기에 좋은 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 되심을 인정치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고, 그들이 육신이 되었던 것과 비슷한 흐름입니다(창 6:2-3).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을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여 따먹었다고 했던 것과도 일맥 상통합니다(창 3:6).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선악과가 뱀의 유혹을 받고 보니, 달리 보였습니다.
요한 1서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했는데요.
삼손도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했습니다.
삼손뿐 아니라, 삼손 시대(사사 시대) 사람들이 다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쉽게 물든 것도 가나안의 화려한 문화가 좋아 보여서 일지도 모르지요.
지금도 TV나 스마트폰이 저의 눈을 자극합니다.
또한, 눈에 좋아 보이고, 높아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하늘을 볼 때 주의 일을 보고, 하늘의 꿈꾸게 된다고 했습니다.
저도 하늘을 바라보며, 추구하며 살기 원합니다.
2. 삼손은 이름 뜻이 “작은 태양”입니다.
위대한 이름입니다.
위대한 탄생 이야기도 있습니다.
위대한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철저하게 자기가 주인 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자기 욕심과 감정에 휩쓸려 살았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여우 삼백 마리의 꼬리에 횃불을 달아서 곡식을 불태운 것도, 나귀 턱뼈로 이천 명을 쳐 죽인 것도, 자기감정에 충실하노라 생긴 일들이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통 다른 사사들을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했고, 그가 사사로 몇 년 동안 있었는데, 그동안에는 이스라엘이 평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20년 동안 사사로 있었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하지도 않았고, 평안을 주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저의 옛사람과 새사람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저의 비전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새사람으로 살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도 나의 옛 성품을 내려놓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려고 애써야겠습니다.
나의 욕심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살려고 애써야겠습니다.
3. 삼손 이야기가 절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희망의 불빛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가 태어날 때 수태고지에서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삿 13:5)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천사는 삼손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구원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구원하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구원하기 시작하는 것이 나중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결국 완성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 싸우다가 언약궤까지 빼앗겼습니다 (삼상 4장).
그러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블레셋에게 대승을 거두었습니다(삼상 7장).
사울 왕도 하나님의 영이 떠난 후에는 블레셋과 전투에서 전사했지만(삼상 31장), 영이 머물 때는 블레셋과 싸워 이겼습니다(삼상 14).
기름 부음 받은 소년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죽였습니다(삼상 17장).
나중에 다윗의 부하들도 거인들을 차례로 죽였습니다(삼하 21장, 대상 20장).
삼손에게서 시작되었던 블레셋을 물리치는 사사의 사명이 후대에도 계속 이어졌고, 결국 다윗이 왕이 되면서 일단락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다윗 이후에도 블레셋이 가끔 등장하긴 하지만, 예전 같은 모습을 회복하진 못했 습니다.)
사람의 연속된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결국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은 수백 년이 지나서도 계속 성취되어 갔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통해 이루실 사역은 어떤 것일까 기대해 봅니다.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반드시 하나님의 일을 이뤄 가실 것이란 사실에 위로를 얻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던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며, 오늘도 힘차게 살아야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mNgo-9K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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