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3/23 삼상 21~24장, “회복 공동체 아둘람” Publish on March 23,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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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은 삼상 22장을 묵상하겠습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어있던 이야기입니다.
골리앗을 죽였던 소년 장군 다윗은 결국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인이 사위를 죽이려 했고, 다윗은 하루아침에 도망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놉 지역으로 도망갔지만, 그를 보호해준 아히멜렉 제사장과 그 일가는 몰살당했습니다.
블레셋 땅 가드로 도망갔는데, 거기에서는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척해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가드와 이스라엘 국경 지역이었던 아둘람으로 도망가 숨었습니다.
그곳은 석회암 동굴 지역이어서,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굴들이 있다고 합니다.
다윗은 그 굴들 중의 한 곳에 숨었는데, 그 굴을 “아둘람 굴”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둘람은 '피난처', '보호처'란 뜻입니다.
아둘람 굴은 다윗과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심장한 장소였습니다.
다윗 자신이 아둘람에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나아온 사람들도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에게 나온 사람들을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참 부족하게 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훗날에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을 보좌하고 충신 노릇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바로 아둘람에서 배출되어 졌습니다.
아니, 어떻게 어중이떠중이가 나라를 지도하는 지도자들이 되고, 장군들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나중에 이 400명이 600명으로 불어났는데요.
다윗이 후에 압살롬에게 쫓겨서 도망갈 때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때 다윗을 따라서 끝까지 다윗과 함께 목숨을 걸고 도망갔던 사람들이 600명이었습니다.
삼하 23장에 보면, 이들이 얼마나 충성스럽고 용맹했는지 그 에피소드 하나가 나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하고 있는데, 장소가 베들레헴 지경이었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다윗이 그 우물물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아, 내가 옛날에 저 물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도망 다니다 보니, 그 물을 못 먹은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옆에서 그 탄식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군인 세 명이 뛰쳐나갑니다.
뛰쳐나가서 목숨을 걸고 우물물을 한 바가지 떠서 가지고 왔습니다.
“다윗 장군님, 여기 물이 있습니다.”
다윗은 그 물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어찌 너희들의 피와 바꾼 이 우물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
그 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받으시옵소서.” 하면서, 땅에 부었습니다.
어떻게 어중이떠중이들이 이런 용맹한 장군이 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그 충성심은 어디서 나왔고 어떻게 해서 그런 훈련이 가능해졌을까요?
아둘람 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1) 사랑과 위로의 공동체가 형성됐습니다.
이 굴에는 각양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상처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고 합니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조그마한 일에도 상처받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서로 부딪혀서 싸워서 소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아둘람에서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런 단계에서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비아달 제사장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아히멜렉 제사장입니다.
다윗이 도망 다니는 중에 아히멜렉에게 가서, 환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것을 알고, 아히멜렉과 그 주변에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습니다.
수백 명이 참사를 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만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 도망친 사람이 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다윗에게 찾아왔습니다.
“다윗 장군, 나만 살아 나왔습니다. 나만 비겁하게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하면서 울었을 것입니다.
그때, 다윗도 그를 끌어안고 같이 울었습니다.
(삼상 22:22)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다윗은 아비 아들이 겪은 비극을 함께 슬퍼하였고,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와 함께 살자고 했습니다.
서로 상한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하고 함께 했습니다.
양식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비참한 중에 있었지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서로 힘이 되어주면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를 누렸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통독 그룹들도, 우리 교회도 이 같은 공동체가 되기 소원합니다.
서로 아파해주는 공동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공동체가 되기 원합니다.
2) 이 굴에서 신앙 훈련을 받았습니다.
400명이 좁은 동굴 속에서 같이 자고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이들의 신앙을 훈련시켰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어린 시절에 기름 부음 받았는지, 어떻게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는지, 어떻게 시편을 지었는지, 어떻게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인도해 주셨는지, 자신을 회복시켜 주셨는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의 삶을 보고 배웠고, 다윗의 말을 들으면서 배웠습니다.
공동체 생활과 성경 공부와 기도를 통하여서 그 거친 사람들이 인격이 다듬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이 세운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되겠다는 한 마음으로 서로 뭉쳐져 갔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서로 알아가면서 서로 부딪히면서 서로 사랑하고 평생 함께할 혁명의 동지들로 서로 엮어져 갔습니다.
주님의 일꾼이 되겠노라고 결단하였습니다.
시 57편은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을 때 지은 시편인데요.
이번에 시 57편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제가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57편을 묵상하는 중에, 다윗 혼자 동굴에서 부르는 노래가 제 귀에 들렸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께 확정되었다고 동굴에서 혼자 찬양하는 것도 참으로 의미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아둘람에서 400명이 함께 했었잖는가!” 하는 생각이 번뜩 드는 겁니다.
그러면서, 400명이 함께 합창으로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다윗 혼자 불렀겠지만, 나중에는 400명과 함께 불렀을 것입니다.
400명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7절을 읽어 보았습니다.
(시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저도, 우리 교회도 아둘람 굴속에서 누렸던 은혜의 용광로를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주님께로 마음이 확정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듬어지고 서로 비전을 공유하면서, 주님의 대업을 이루기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배우고 훈련받기를 기뻐하고, 주님의 일꾼으로 다듬어지기 원합니다.
3) 아둘람에서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삼상 22:5) 22: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이 요새에 더 이상 머물지 말라. 유대 땅으로 돌아가라” 했습니다.
● 겨우 피난처를 찾았고, 이제 겨우 조금 안정되었는데, 어디를 가란 말입니까?
● 그 요새에서 벗어나서, 또다시 사울 왕과 숨바꼭질 노릇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 옛날에는 혼자 혈혈단신이었지만, 400명이나 데리고 어디 숨는단 말입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그 무리들도 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말씀하실 때, 그곳을 나와서 유대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이런 훈련 받기 원하십니다.
“가라” 할 때 가고, “서라” 할 때 서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렇게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서 일하시기 원하십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생각납니다.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은 그곳을 이스라엘을 보호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가야 할 곳을 지정해 주는 화살표였습니다.
● 구름 기둥이 가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계속 가야 합니다.
● 반대로, 구름 기둥이 서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그곳에 계속 서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저 산만 넘으면 훨씬 지내기가 더 편할 것 같은데, 이 구름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구름이 멈추어 있을 때, 사람 들이 아침마다 눈 뜨면 무엇부터 하겠습니까?
구름이 움직이나 안 움직이나 하늘부터 쳐다보지 않습니까?
요즘 주님이 저에게도 이런 훈련을 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 훈련을 잘 통과하길 원합니다.
제 마음이 오직 주님께만 확정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우리 통독 그룹도 주님께만 마음이 확정된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공동체로 다듬어져 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주님이 준비하신 곳으로 힘차고, 용기 있게 전진해 나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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