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5/23 신 20-23장 “전쟁의 법칙” Publish on February 25,2023 | 관리자
페이지 정보

본문
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은 신 20장에 나오는 전쟁 규례를 묵상하겠습니다.
신명기 5-26장은 언약 조항들을 설명하는 부분이라고 했잖아요.
5장이 십계명이고, 19-22장은 살인 금지(7계명)에 대한 해설입니다.
20장에 전쟁 규례가 나오는 것은 사람 목숨이 가장 위협받는 곳이 전쟁이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규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20장 1절은 전쟁할 때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신 20:1)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전쟁에서 적군이 아무리 많아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적군과 전투하기에 앞서, 전열을 정비했습니다.
군인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줄을 서 있다가, 신호가 울리면 한꺼번에 돌격했습니다.
현대전은 무가가 중요합니다.
누가 더 위력적인 무기를 가졌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작은 나라라도 핵무기나 스텔스 전투기 같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주변에서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 전쟁에서는 숫자가 중요했습니다.
예전에는 무기체계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무기하고 해봤자 창, 칼, 활 같은 것이었죠.
그래서 숫자가 중요했습니다.
군인 숫자가 곧 국방력이었습니다.
더구나, 말과 병거가 있다면, 무기 체계조차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말입니다.
말은 병거를 끌고, 기마부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고대 전투에서 말과 병거는 현대전의 탱크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에 나갔는데, 적군이 엄청나게 많다면, 더구나 말과 병거가 가득하다면, 우리 편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특이한 장면이 나옵니다.
보통은 장군이 앞장서서 연설을 하고,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제사장이 앞서서 설교합니다.
이 전쟁은 육적인 행위가 아니라, 영적 행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설교의 내용을 보십시오.
(신 20: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신 20: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
겉으로 불리해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이스라엘은 절대 겁내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이 우리보다 강하면 어떡하냐고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쟁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호사밧이 모압/암몬/마온 연합군과 전쟁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레위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
그리고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대하 20:17).”고 하셨습니다.
브라가 골짜기에서 레위사람 찬양대가 앞장서서 찬양하며 나아갈 때,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적군을 물리쳐 주셨다고 했습니다(대하 20:22).
2. 두려운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
전쟁의 승패는 적군이 얼마나 강하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자, 포도원 농부, 약혼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전쟁에 집중하지 못할 사람들은 차라리 집에 돌아가라고 합니다.
특히, 8절에 지휘관들이 집에 돌려보내는 사람을 보십시오.
(신 20:8)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여
두려운 자는 집에 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합니다.
두려움은 전염병과 같습니다.
두려운 마음, 부정적인 마음을 굉장히 쉽게 전염됩니다.
소그룹에서 나눔을 할 때도 첫 번째 사람이 “별 일 없어요. 나눌 것 없어요.” 하면서 마음을 닫는 말을 하면, 그날 나눔은 깊게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회의를 할 때도 한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옆의 사람도 금세 움찔해 집니다.
그래서 지금 전쟁할 때도 두렵고, 겁나는 사람은 돌아가라고 합니다.
오히려 다른 군인들의 마음도 낙심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자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수의 불신자보다, 소수의 신자를 원하십니다.
믿음이 연약한 다수보다, 믿음으로 똘똘 뭉친 소수가 훨씬 강력할수 있습니다.
기드온의 300용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미디안 군대 12만 명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급하게 군대를 2만 명 모았는데요.
결국 2만 명을 거의 다 돌려보냈습니다.
1) 기드온은 그중에 겁먹은 군인들 12,000명을 집에 돌려보냈습니다.
2) 남은 10,000명도 물 마시는 형태로 구분해서, 무릎을 꿇고 마시는 300명을 제외하곤 다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3) 그런데, 하나님은 그 300명으로 미디안 10만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기드온이 이긴 것은 300명이 일당백의 위대한 용사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이 이긴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방법으로 이겼습니다(삿 7:19-21).
300명이 10만 명 앞에 서서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런데, 적들이 놀라서 도망갔습니다.
이게 말이 될까요?
음향 공부한 분들은 아실 겁니다.
스피커는 거리가 멀수록 음량 감쇠가 심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스피커라도 멀리 떨어지면, 소리가 약해집니다.
그러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300명이 항아리 깨고, 나팔 부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얼마나 멀리 나갔을까요?
10만 명의 뒤쪽에 줄 선 사람은 300명이 치켜든 횃불이 보이지도 않았고, 항아리 깨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설령 보였고, 들렸다손 치더라도, 용감한 군인들이 그 소리에 놀라 도망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추측입니다.
그럼, 왜 기드온이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횃불이나 나팔 때문이 아닙니다.
그 횃불과 나팔 뒤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하시고 싸워주셨기 때문에, 승리했던 것입니다.
기드온이 승리한 유일한 이유는 횃불과 나팔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믿음 약한 다수가 나가서, 처음에 모였던 2만 명이다 전쟁에 나가서 싸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12:2의 싸움에서 이길 리가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들이 이겼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요?
아닙니다.
자기들 숫자 때문에, 자기들이 머리를 잘 썼기 때문에, 이겼다고 착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쭉정이같은 군인들은 다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는 알곡 같은 군인들을 통해서, 기적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우고, 주의 교회를 위해 싸우는 영적 군사인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혹시 제 마음에 겁내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 내려놓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전쟁의 주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에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의 교회를 위해 힘껏 싸우고, 승리를 쟁취하기 원합니다.
- 이전글02/26/23 신 24~27장 “약자보호법” 23.02.26
- 다음글02/24/23 신 16~19장 “점쟁이 대 선지자” 23.02.2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