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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3/10/23 삿 4~5장, “드보라와 야일” Publish on March 10,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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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68회 작성일 23-03-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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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은 삿 4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사사기는 3장부터 16장까지 12명의 사사가 등장합니다. 

3장에서는 옷니엘, 에훗, 삼갈이 등장했고, 4~5장에서는 여사사(여 선지자) 드보라와 바락이 나옵니다.

4장은 서술체로, 5장은 시가체로 되어 있습니다.

한 사건을 두 장이 다른 문학 장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여성의 인권이 아주 낮은 시대였는데, 여성이 지도자로, 그것도 사사와 선지자로 활약했다는 것은 상당히 눈에 띄는 장면입니다.


1. 악순환의 반복

(삿 4:1)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에훗이 죽자, 이스라엘은 다시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악의 사이클이 또다시 돌아갑니다.

1) 하나님을 버림(우상숭배), 2) 이방 민족을 통한 압제(고통), 3) 회개와 구원을 간구, 4) 사사를 통한 구원과 평화 5) 망각의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이스라엘은 금세 하나님을 잊고, 우상에게 달려갔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언약에서 약속하신 대로,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을 이방 민족인 하솔 왕 야빈의 손에 내주셨습니다.

하솔은 150년 전에 여호수아가 물리친 북부 연합군의 주축 세력이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하솔의 왕 야빈을 죽이고, 사람들을 진멸하고, 하솔을 불태웠습니다.

(야빈(Jabin)은 하솔의 왕 칭호입니다. 애굽의 왕의 칭호가 바로(Pharaoh)인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150년 만에 하솔은 완전히 부활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는 정복했었는데,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니, 도리어 이방인들에게 지배받게 됩니다.


야빈이 이스라엘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야빈의 손에 파셨기 때문입니다(4:1).

야빈의 손에 파신 것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이행하신 것이고, 동시에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방인에게 팔아서라도 다시 돌아오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당하지 않았을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자기 나라를 불태웠던 이스라엘이니, 야빈은 얼마나 가혹하게 통치했을까요?

20년의 압제 만에, 결국 다시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잘 잊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눈앞에 서 있습니다.

코람데오(Coram Deo)입니다.

핵심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선지서의 수많은 메시지가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메시지였습니다(사 55:7, 렘 3:12, 호 14:1, 욜 2:12, 슥 1:3).

저도 틈만 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 사랑과 은혜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고백합 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 품에 안기고, 하나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


2. 전쟁 승리

가나안왕 야빈은 철병거 900대를 가지고,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압제했습니다(4:3).

나중에 전쟁할 때도 그 900대를 동원했습니다(4:13).

출애굽 당시에 홍해로 추격해오던 애굽의 특별 병거가 600대였는데, 야빈의 철병거가 900대라고 하니, 그의 군사력이 엄청난 규모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출 14:6-7). 


이때 이스라엘의 사사요 선지자는 여인인 드보라였습니다.

드보라가 또 다른 사사 바락을 보내어 전쟁하게 합니다. 

“(삿 4: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바락은 두려워서, 드보라가 함께 갈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바락이 동원한 군대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을 합쳐 겨우 1만 명이었습니다. 

철병거 900대(즉 탱크 900대)와 민병대 1만 명의 싸움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거의 학살당하는 수준으로 패하는 게 정상입니다.

바락은 인간적으로 계산이 되었기 때문에 겁이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드보라가 간다면 싸우겠다고 한 것은 그로선 최선을 다해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 나갔다는 것만 해도 상당히 용기 있고, 신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성 몇 바퀴 돌고 고함질러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하나님이십니다.

태양과 달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시스라의 군대를 혼란케 하시고, 전멸시키셔서 이스라엘이 승리케 하셨습니다.

“(삿 4: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여기에서 포커스는 열세인 군사력으로 막강한 적을 물리친 드보라의 위대한 리더십이 아닙니다.

돌멩이라도 외쳐 찬양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당시 인간 대접받지 못하던 존재인 여인을 들어서라도, 겨우 만 명의 민병대로 애굽 군대의 규모와 맞먹는 엄청난 군사력을 박살 내버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이란 것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하나님을 믿고 따르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오너라.”라고 하시는 초청인 것입니다.


저도 툭하면 눈앞의 상황에 정신이 팔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셨던 과거를 잊어버리고, 제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앞에 펼쳐진 전쟁을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분석한다고 이기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잘못하면 불신앙으로 빠지게 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도 10 정탐꾼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 때, 자신을 메뚜기라 여겼습 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었던 2 정탐꾼은 저들은 우리 밥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이깁니다.

저도 적들을 보면서 겁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살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실 승리를 소망하며 살기 원합니다. 


3. 이방 여인

전쟁을 시작할 때, 여사사요 여선지자인 드보라는 바락에게 나가 싸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락은 두려워서, 드보라가 함께 갈 것을 요청했습니다.

드보라가 함께 가긴 하지만, 한 여인이 시스라를 죽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삿 4: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그 여인은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이었습니다.

겐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모세의 장인과 모세의 부인 십보라가 겐 사람이었습니다.

야엘은 헤벨이란 남자의 부인이었습니다.

즉, 야엘은 이방인이고, 여인입니다.

유대인 남자에 비해 이중으로 열등한 존재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열등한 존재였던 여인 드보라가 남자들을 거느리는 군대 사령관이 되는 것만 해도 말도 안 되는 것인데, 적의 군대 장관을 죽이는 일등 공신도 여인이라 합니다. 

그것도 이중으로 열등한 존재인 이방 여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연약한 존재의 손을 들어서 시스라를 처단하셨습니다.

전쟁하느라 피곤하여 잠에 곯아떨어진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였습니다(삿 4:22).

그럼, 연약한 부인이 그렇게 하는 동안, 남편은 뭐 하고 있었을까요?

드보라는 랍비돗의 아내라 했고, 야엘은 헤벨의 아내라 했습니다.

그런, 그 남편들은 뭐하고, 연약한 부인들이 나서야 했을까요?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체제 속에서, 권력과 권위를 쥐고 있던 남자들은 벌벌 떠는 허수아비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연약한 여인이라도 하나님 역사의 통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손을 통해서라도 권능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시 8:1).

하나님은 돌들이라도 외쳐 찬양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불가능한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제 당했던 것은 진짜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어려움의 원인은 군사력이나 정치력에 있지 않았고, 하나님을 외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시 사회의 약자였던 여인을 통해, 그것도 이방인 여인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얘들아, 봐라! 내가 사용하면, 이방 여인이라도 적장을 죽이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하물며 너희들은 얼마나 더욱 그렇겠냐? 그런데, 너희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정신 차리고, 부끄러워하면서, 내게 돌아오라.” 하시는 메시지입니다.


저도 정신 차리고, 허깨비 같은 짓 그만하고, 여호와께 돌아가야겠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더욱 친밀히 하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해야겠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 통로, 역사의 통로,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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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kdFH0iSBU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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