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8/23 출 30-32장 "금송아지 우상"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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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토) 출 30-32장 "금송아지 우상"
목장 식구 여러분,
오늘은 출 32장,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출 24장에서 백성의 장로들이 하나님과 언약의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장로들과 모세 일행이 시내산 중턱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뵈었고, 먹고 마셨습니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체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 돌판을 주시겠다 하셨습니다(출 24:12).
십계명은 출 20장에서 선포해 주셨지만, 이제 문서로 남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맹렬한 불과 구름이 덮인 시내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거기서 40일을 머물렀습니다(출 24:18).
그곳에서 성막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도 받았습니다(출 31:18).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장면인지 모릅니다.
참고로, 어떤 분들은 두 돌판에 1~4계명, 5~10계명이 쓰였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아마 찬송가 맨 뒷장에 그렇게 되어 있어서, 영향 받으신 것 같습니다. ^^;;)
그러나 학자들은 똑같은 내용의 돌판 두 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 것이고, 하나는 사람 것입니다.
당시 언약 문서들은 똑같은 문서를 두 개 작성해서, 서로 나눠 가졌습니다.
(요즘도 매매 계약서를 작성할 때, 판매자와 구입자가 똑같은 문서를 2부 작성해서 하나씩 나눠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정작 산 아래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벼락 맞아 죽어도 싼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인간에게 왜 성소가 필요한지를 증명하는 역설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죄 용서의 통로를 만들어 주셔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상숭배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왜 우상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저는 우상 숭배하지 않는지 비춰보려고 합니다.
1. 의심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두려워 떨었고, 언약을 잘 준행하겠다고 했습니다(출 24:3).
그런데, 40일이 지나도록 산에 올라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딴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모세가 살아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됩니다(32:23).
의심은 단지 모세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었습니다.
이 의심은 불평과 데모로 이어졌습니다(32:1).
자기들의 방식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우상이었습니다.
이것이 우상을 만든 첫 번째 원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고(확신이 없고), 인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뭔가 해보려고 시도하다보면, 우상숭배로 귀착됩니다.
인간이 하나님 없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뭔가를 만들면,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물을 만들게 됩니다.
저도 제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게 되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무언가를 만들게 되면, 우상을 만들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2. 자기를 위로하고, 만족을 줄 존재
백성들이 우상을 만든 두 번째 원인은 자기를 위로하고, 만족을 줄 존재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백성들은 자기들의 불안을 위로하고, 만족감을 줄 존재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종교심이 우상숭배를 만듭니다.
이 사건 후에 모세가 기도할 때,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출 32:31)...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우상숭배는 단지 동상이나 어떤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 만드는 것”이 우상입니다.
종교의 중심에 자기 자신이 있는 것, 자기를 위해 신을 만드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요즘은 형상으로 만든 우상(예, 동상, 불상 등)을 경배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 신을 섬기는 행위는 자주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 헷갈리기 쉽고,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 자녀나 배우자, 가족의 행복이나 건강, 직업이나 사업, 미래의 꿈같은 것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 돈이나 과학기술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교회 다니는 것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교회 다니는 것이면, 자신의 습관이나 체면으로 교회 다니는 것이면, 교회 다니는 것조차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매우 헷갈리기 쉽고, 말하기도 조심스럽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구약 시대의 유대 백성들은 성전에서 제사 지내면서도, 우상을 섬겼습니다.
제사장과 선지자가 눈앞에 있어도, 우상을 섬겼습니다.
저도 저 자신이 중심이 되면 우상을 만들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3. 이집트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
애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 물론, 육체적으로는 출애굽 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는 여전히 애굽적인 요소들이 남아 있습니다.
과거에 했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짜내니까, 나온 것이 금송아지 우상이었습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금붙이를 모아서 금송아지 동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백성들이 금송아지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 자기들을 출애굽 시켜 주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 즉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집트의 종교관에 영향 받은 행동입니다.
이집트 사람들도 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이 눈에 보이는 짐승이나 곤충에게 들어가 있다거나, 짐승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짐승이 신이 아니라, 신이 짐승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피라미드 발굴한 것을 보면, 파라오 옆에 짐승의 동상(짐승 인형?)이 많이 놓여 있는데, 왕이 가지고 놀던 인형이나 반려동물이 아닙니다.
왕이 섬기던 신이나, 왕을 지키는 수호신의 동상을 놓아둔 것입니다.
그 신이 이 땅에서 짐승 모양을 한 것이지요.
지금 이스라엘도 그런 생각(이집트적인 종교관)에 영향을 받아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송아지 형상 속에 계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을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시내산으로 데려오셨는지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노예로 살았던 이집트의 영향에서 벗어나길 원하셨습니다.
이집트의 종교관과 문화와 습관까지 다 벗어버리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다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습관과 새로운 종교관을 가지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상은 과거에 영향 받습니다.
또한, 우상은 세속에 영향 받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영향력이 셉니다.
세속적인 생각과 사고, 가치관, 종교관, 세계관, 습관, 문화가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저도 과거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세속적인 생각과 영향을 벗어버려야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4. 기다림
기다리지 못하면,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엄청나고, 강력한 경험을 했습니다.
● 열 재앙과 홍해를 경험했습니다.
● 광야에서도 기적적인 방식으로 물을 마셨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 시내산에서는 바로 며칠 전까지 하나님이 엄청난 자연 현상으로 임재하신 것을 목격했습니다.
● 그리고, 언약을 맺었고, 전대미문의 경험 속에 두려워 떨며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40일 만에 돌아섭니다.
인간의 경험이란 것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인간의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잊기 쉬운 것인지 보게 됩니다.
그리고 기다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게 됩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시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시간에 메이는 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더디다고 생각하고, 인간이 그 시간을 결정하고, 인간의 방식으로 뭔가를 하려는 데서 우상숭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는 행동은 근본적으로 불신앙입니다.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했고, 자기가 뭔가 해보려 했고, 결국 자신의 경험과 애굽적인 방법들을 더해서 만든 것이 금송아지였습니다.
31장, 32장의 타이밍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더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생깁니다.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조금도 참지 못하고 안달하는 제 모습 같습니다.
저도 조금 더 참고, 하나님의 시간에 의지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주님,
주 앞에 엎드려, 다른 신 아닌, 주님만 경배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저의 모든 우상들을 모두 다 내려놓고, 주님만 경배하기 원합니다.
오직 주께...
https://www.youtube.com/watch?v=PJ_CLfu3G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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