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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1/02/23 창 4-6장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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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06회 작성일 23-02-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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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월) 창 4-6장

성도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틀째 통독을 잘하고 계신지요?

오늘은 창 4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어제 주일 설교했던 본문입니다.)


이 본문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로 유명하죠.

가인과 아벨이 함께 제사를 지냈는데, 가인의 제사는 열납되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열납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아는 주일학교 이야기입니다.  


I. 질문

왜 아벨의 제사는 열납되고, 가인의 제사는 거부되어졌을까요?

굉장히 자주하는 질문이지요.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a. 어떤 이들은 농경문화와 목축문화의 구도로 봅니다. 

하나님은 농부보다 목자를 더 좋아한다는 겁니다.


b. 비슷한 선상에서, 어떤 이들은 곡식 제사와 고기 제사의 구도로 봅니다. 

가죽옷 사건 이후로 하나님은 고기 제사를 원하셨는데, 가인이 제 멋대로 곡식으로 제사지냈다는 의견입니다.   


c. 또, 어떤 이들은 아벨의 제사에는 피 흘림, 즉 속죄의 피흘림이 있었는데, 가인의 제사에는 없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d. 유대인들이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인 70인역(LXX)에서는 아벨은 제물을 하나님의 규례대로 잘 잘라서 드렸는데, 가인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II. 문제점

그러나, 이런 견해들엔 몇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a. 하나님은 목축과 농경 둘 다 인정하셨습니다. 

어느것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농사군이었기 때문에 곡식으로 제사드린 것이고, 아벨은 양치기였기 때문에 짐승으로 제사드린 것입니다. 

제물의 종류의 차이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는 힘듭니다. 


b. 고기 제사니 곡식 제사니 하는 구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제사하면 짐승을 잡아죽이는 제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의 제사법에는 짐승 제사가 많긴 하지만, 곡식 제사에 대한 규례도 분명히 있습니다. 

소제는 구약 전체에서 130번이나 나옵니다. 

곡식 제사도 분명히 하나님 뜻에 합당한 제사 방법입니다.  


c. 또한, 후대에 만들어진 제사법이란 잣대로 창조 시대의 사건에 대해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III. 묵상 

1. 제사를 받으심

사람들은 둘 중에 왜 아벨의 제사를 받아 주셨을까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이유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앞에서 여러 가지 추측들을 요약하긴 했지만, 그 어느것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의 영역이지, 사람이 관여할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에서와 야곱이 출생할 때,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야곱을 선택하셨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하셨습니다.

또한, 출애굽할 때도 하나님은 아론이 아니라, 모세를 택하셔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중보자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왕국시대에도 하나님은 다른 형들이 아니라, 막내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이런 선택들은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이지, 사람이 그 선택에 왈가불가 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님이 인간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의 제사를 받으셨느냐” 보다 더 우선해서 생각할 문제입니다. 

가인이나 아벨이나 모두 범죄한 아담의 후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범죄한 후손의 제사를 받아 주셨다는 것이 크나큰 사건입니다.

제가 하나님이었다면, 범죄한 아담에게서 태어난 후손이 드린 예물을 받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맛있는 빵이라고 하면서, 더러운 손으로 빵을 떼어 준다면, 기쁘게 먹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하지 않은(범죄한) 인간이 드리는 제사를 거부하지 않고, 기쁘게 흠향해 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누구의 제사라도 선택해 주시고, 기뻐해 주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둘 중 아무도 기뻐하지 않으셨다면, 만일 아담의 후손 중에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가 없으면, 그야말로 큰일입니다.

아무리 가죽옷을 가리워 입혔어도, 아담의 후손들에겐 소망이 없는 것이지요. 

그들이 지금 범죄하고 저주받은 에덴 동편에 살고 있는데, 만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신 후손이 없으면 그들의 나라는 끝장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을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던 것처럼, 지금 범죄한 아담의 후손의 제사를 기뻐하시고 그 예물을 받아주셨습니다. 


이것을 모세의 언어로 표현하면, 아벨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이다. 

그러면, 지금 가인은 자기 제사가 받아지지 않은 것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아벨의 제사가 받아진 것을 같이 기뻐해야 했습니다.

그 제사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도 제사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구원의 반열에 들었을 것입니다.

아벨을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를 따라서 나가는 것만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인의 관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거나,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생겼다거나, 자기도 제사에 동참해서 구원받을수 있다거나 하는 데에 있지 않았습니다.

겉으론 하나님께 제사 행위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자기가 선택되느냐 마느냐에 온통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선택되지 않았을 때, 화가 났고, 자기 대신 선택된 자,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를 죽여버렸습니다.

인류 구원의 길을 박살냈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에덴에서 쫓겨난 정도가 아니라 가인은 땅에서 저주받아 유리하리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런 가인도 불쌍히 여기셨고, 보호해 주셨지요.

또한, 에노스를 주셔서 인류 구원의 길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방해로 방해받지 않습니다.)


2. 성경은 이 제사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있을까요?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브리서는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바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가인은 믿음이 없었고, 아벨은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럼, 우선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실상은 객관적 의미로는 본질이나 실체(reality)를 뜻하는 것이고, 주관적 의미로는 확신(conviction)을 뜻합니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의 확신이요, 바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신념이란 말입니다. 

물론, 이 신념은 하나님에게 얻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느날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약속이 너무나 희미해보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2) 믿음은 보지못하는 것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망원경같은 것입니다. 

예를들어, 두 사람이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배에 서 있습니다. 

저 멀리 작은 점이 보이는데, 너무 멀어서 맨눈으로는 실체를 확인할수 없습니다. 

그때 망원경을 꺼내서 보면, 섬인지 배인지 정확히 보입니다.

망원경이 자연적인 시력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듯이, 믿음은 육체의 감각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실상으로 보게 합니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미래에는 가능해 질 것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그것의 실체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3. 아벨이 믿은 것

그렇다면, 아벨이 믿은 것은 무엇일까요?  

또한, 어떻게 그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한가지 힌트는 가죽옷입니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셨지만, 동시에 나중에 여인의 후손이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는 첫 번째 복음도 주셨는데요(창 3:15).

당시 아담이 그것을 들었을때는 그 실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이 예수님이란 것을 알지만, 당시에 처음들었을때는 너무 아득한 얘기였겠지요.)

뭔가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당시에 아담에게 현실적인 문제는 자기의 부끄러운 몸을 가리는 것이었고, 무화과 나무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하지만, 나뭇잎으로 만든 옷이 오래 갈 리가 없지요. 

그 때, 하나님이 이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아담은 가죽옷을 입을때마다 자신의 죄와 나뭇잎 옷의 쓸데없음과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의 예언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죽옷을 주셔서 자기 몸을 덮어 주셨듯이, 메시야를 보내어 인간을 구원해 주실 것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두번째 힌트는 아벨이 아벨은 양을 친 이유를 추측해 보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아담의 아들인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을 쳤습니다.  

가인이 농사를 지은 것은 바로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한 후에 농사를 지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왜 하필 양을 쳤을까요? 

요즘은 고기나 털을 얻기 위해 목축을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육식하지 않았습니다. 육식은 노아 홍수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털을 깍아서 실을 만들고, 털옷을 짜는 기술도 한참뒤에나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시에 양을 친 이유를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당시로선 목축과 관련된 유일한 힌트는 가죽옷 뿐입니다.

아벨은 아버지 아담이 하나님에게 얻은 가죽옷의 복음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목축을 했고, 그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기로는 제사를 지내었던 것입니다.


제사는 단지 제사 의식만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제사는 그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인생과 삶 전체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아벨의 믿음과 삶을 기뻐하셨고, 그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도무지 손에 잡기 어렵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복음의 약속을 믿고, 믿음중에 바랬던 것을 보셨고, 그런 믿음으로 짐승 제사를 드린 것을 기뻐하며 받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아벨의 행위가 의롭다 했습니다. 

“(요일 3: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저도 아벨같은 믿음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오늘 제가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믿음을 품고 살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고 살고,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소망하면서 살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믿음의 제사로 바치며 살기 원합니다.

아벨처럼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려고 애써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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