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7/23 창 18-20장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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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토) 창 18-20장
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창세기 20장을 묵상하겠습니다.
20장은 아브라함이 그랄에 갔다가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였던 에피소드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하여, 두어 가지 포인트를 묵상하게 됩니다.
I. 믿음은 움직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하면, "믿음의 조상"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죠.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제물로 바치던 장면이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믿음의 영웅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의 인생에는 믿음의 영웅이라 부르기에 어색한 모습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이끄심 덕분입니다.
원래 아브라함은 불신자였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집안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수 24:2-3)
유대인들 전설에 의하면,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서 파는 우상 장수였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우르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하"자와도 상관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 뒤로, 아브라함은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믿음이 자라갔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믿음이란게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그 믿음의 여정이란게 얼마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지 잘 보여줍니다.
우선,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창 20장은 이삭이 태어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 17장에서 아브람이 99세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잖아요.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겠다 하셨습니다.
● 18장에선 소돔과 고모라를 방문하러 가던 천사 세명이 아브라함을 방문해서,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했습니다.
● 19장은 소돔이 망하는 이야기니까, 빼고요.
● 20장이 지나고, 21장에 가면 드디어 이삭이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20장은 이삭이 태어나기 직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100세에 아브라함이 아들 낳은 것이 엄청난 믿음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 믿음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듯 계속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년에 믿음이 90이었으니까, 올해는 믿음이 100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작년에 90이었는데, 금년에 30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언제든지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동사입니다.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직전에 자기 와이프를 동생이라 속였습니다.
창 12장에서 애굽에 갔다가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적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는 믿음의 초기이고, 첫번째 행동이니까 실수라고 칩시다.
그런데, 지금은 두 번째잖아요. 상습범입니다.
이 행동을 반복한 타이밍이 언제입니까?
다시 문맥을 보십시오.
● 17장에서 하나님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까,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하셨잖아요.
● 18장에서는 천사를 보내어 "아들준다"고 약속하셨고, "내가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겐 숨기지 않는다"고 하셨고, 소돔을 멸망시킬 계획도 알려주셨잖아요.
● 19장에서는 아브라함을 위해서 소돔이 멸망하는 중에 룻을 살려주시는 것을 경험했잖아요? 믿음과 체험의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장에 와서 정작 아브라함이 어떻게 합니까?
“창 20: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기가 찬 노릇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만 기가 찰까요?
우리 모습은 어떠할까요?
우리를 돌아보면, 우리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언제든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심하면 안됩니다.
나는 안전하다고, 나는 넘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하면 안됩니다.
늘 조심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를 주는 장면이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이 20장 2절로 끝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창 20:3).”
아브라함이 바닥을 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상황을 해결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다시 신앙의 여정으로 되돌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넘어질 때가 있고, 실수할 때도 있고, 신앙이 가라앉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면 다시 일어나게 될줄 믿습니다.
2. 선지자 의식을 회복하자.
“(창 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줄 알찌니라.”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이 선지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선지서에 나오는 사람만 선지자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선지자이고, 모세도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선지자에게 몇 가지 역할을 주셨습니다.
1) 중보기도자의 역할입니다.
“창 20:7…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 18장에서 롯을 위해 중보기도해서 롯이 살아났잖아요?
● 이제 20장에서는 아비멜렉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중보기도자였듯이, 우리도 중보기도할 책임을 받은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교회를 위해, 담임목사를 위해, 통독그룹들과 위원회들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이 땅을 위해 중보기도하기 원합니다
2) 치유자의 역할입니다.
“(창 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아브라함이 직접 아비멜렉 가문의 여인들의 태를 치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했을때, 그 여인들이 치료되었고, 자녀를 생산케 되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그의 믿음은 더욱 성숙해졌습니다.
그리고, 21장에서 이삭이 태어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역할과 사명을 주셨을까요?
우리도 마음의 치유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위로하고, 용기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역할이든, 어떤 사명이든 다 좋습니다.
우리도 기쁘게, 충성스럽게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한해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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