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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5/29/23 욥 38~39장, “폭풍속의 하나님” Publish on May 3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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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35회 작성일 23-05-3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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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드디어 하나님이 등장을 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욥기의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등장에서 선교와 신정론의 주제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1) 욥기는 욥이 고난 받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면, 욥을 알던 모든 이들이 다시 와서 그의 회복을 보게 하시고, 그를 회복시킨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알려지게(known) 하십니다. 

이런 과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 욥기에 나타나는 선교적 측면입니다.


2) 욥기의 주제가 신정론(Theodicy, God is Good)인 것도 고난을 통해 설명됩니다.

욥의 고난에 대한 논쟁 끝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데요.

하나님도 그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어떻게 이 땅을 통치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 가운데 여전히 선하시고, 그 모든 상황을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맞닥뜨리면서,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욥 자신의 질문은 태양 앞에 눈 녹듯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래서 욥기의 신정론은, “우리가 이해 못 하는 상황과 고난 속에 있더라도, 그 고난보다 더 크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우리보다 크신 하나님께 우리 고통을 가지고 나아가자. 그 하나님의 하실 일을 믿고, 의지하자. 하나님을 경외하자.”라는 결론을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그러나 “감히 어디 알려고 해. 무조건 꿇어”라고 하는 게 아니란 것이 포인트입니다. 

아들에게 설명하듯 “욥아, 너 이거 아니?”라고 해 주십니다. 

오늘 저에게도 “인환아, 너 이거 아니? 잘 들어보렴.”하시는 음성을 기대합니다.


I. 38장

엘리후가 인과의 법칙을 한창 강조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말을 끊으시고 등장하십 니다.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임재하십니다(욥 38:1).

성경에서 폭풍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현현(Theophany)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이 폭풍이었습니다.

(참고로, “하나님의 현현”은 하나님이 직접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을 뜻합 니다. 

하나님이 장엄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직접 임재하실 때, 그 위엄으로 인해 폭풍 같은 현상이 동반되곤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시고 폭풍 속에서 직접 나타나셔서, 욥을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은 백성의 울부짖음과 탄식 소리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출 2:23 -25).


1. 신정론적인 관점

드디어 등장하셨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정작 욥이 질문하던 것에 직접 답하지 않으십 니다.

오히려 욥이 알 수 없는 얘기들만 잔뜩 하십니다.

하나님의 발언에서 반복되는 표현이 “아느냐?”입니다.

28장 지혜의 주제가 하나님의 발언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들은 욥은 하나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구무언 합니다.


이게 뭘까요?

1) 하나님은 여태껏 일어난 일들이 어떤 결론으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보여주십니다.

2) 하나님의 수준이 욥을 포함한 인간들이 복닥거리는 수준보다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발언을 신정론적으로 풀어서 말씀드리면요.  

“욥아! 만유의 창조주이며 주인이신 하나님을 네가 어찌 이해하겠느냐??

인간은 악(고난)의 문제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크신 지혜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 위에 계시면서, 만물을 통치하고 계신다.

그리고 사단의 교만을 찾아내고 낮아지게 심판하신다.

인간이 할 바는 그분을 신뢰하고, 경배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욥이 하나님 앞에 섰잖아요.  

하나님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욥은 자기 문제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신앙적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2. 신정론의 하나님은 사랑하는 의인을 세워주시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문맥을 다시 생각해 보면요.

● 친구들은 `하나님은 높고 하나님은 공의롭다, 네가 틀렸지 하나님이 틀렸을 리는 없다, 그러고 다 알려고 하지 마라. “했습니다.

● 그러자, 욥은 `아니다. 너희들이 얘기하는 것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 물어봐야겠다.”라는 말싸움을 했습니다.

● 그리고, 38장에서 드디어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만약 친구들이 옳았다면, 욥에게 “너 어디 감히 대드는 거냐?” 하셔야 할 것이고,

만약 욥이 옳았다면, “너는 당연히 알아야지. 내가 대답해줄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에게 “너 아니?”라는 얘기하십니다. 

욥이 틀린 것 같고, 하나님이 욥을 기죽이는 장면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틀린 것은 친구들이라 하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부분은 하나님이 욥을 기죽이는 게 아닙니다.

그 힌트는 “대장부처럼(38:3)”입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라” 하십니다.

“대장부”에 집중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재구성하면요. 

“너는 대장부이다. 대장부로 부름을 받았다. 

꼬리 내리고 도망갈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천지 창조하셨던 일에 대해 알아야 하는 존재이고, 하나님이 이 땅을 통치하시는 것에 대해서도 알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이제 가슴 펴고, 당당하게 하나씩 알아가거라. 

그러니  욥아, 너는 이걸 보았느냐? 이걸 아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후와 차이점입니다. 

엘리후도 천지창조를 언급했잖아요. 

그런데 엘리후는 “하나님이 이렇게 위대하게 천지 창조하신 분이고, 넌 조그마한 피조물 에 불과하다. 네까짓 게 이런 걸 어찌 알겠느냐? 그러니, 너는 감히 하나님께 대들고 불평 할 존재가 아니다.”라고 욥을 기죽이는 어조로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욥아 내가 이렇게 위대하게 만들어 놓은 세상이 바로 너를 위한 것이란다. 내가 천지를 만들고 주관하고 있듯이, 내가 너도, 지금 이 자리까지 오도록 허락하고, 인도하였다”라고 격려하는 문맥인 거죠.

창조자와 당당하게 대면하고, 대화하는 존재로, 창조자가 설득해야 하는 대단한 존재로 취급하고 계신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 이니라.


주인은 종에겐 다 알려주지 않습니다. 시킬 일만 가르쳐주죠. 

그러나 아들에겐 다 알려줍니다.


● 친구들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크고 높다. 거기와 비교하면 너는 조금만 인간에 불과하다. 그런데, 네가 하나님을 만나 물어보겠다고? 네 주제를 알아라”

즉, “너는 미천한 종이다”라고 했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종이 아니다. 너는 이거 알아야 한다.”

즉, 종이 아니라, 아들(또는 친구)이라고 하셨습니다.  

   

II. 39장

이제 욥의 논쟁과 고난에 대해 하나님이 답하시는 관점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욥과 친구들은 치열하게 논쟁했고, 욥도 목이 쉬도록 하나님께 한탄하고 불평했습니다.

여태껏 고난 겪은 욥이 분노하고, 절망하고, 한탄하던 것에 대해 하나님이 주는 답하십 니다. 

● 38장에선 눈, 우박, 비 같은 자연 현상을 언급하십니다. 

● 39장에선 들 염소, 들 나귀, 들소, 매, 독수리 같은 여러 야생동물을 언급하십니다.


“너는 네가 고통당할 때 내가 없었다고, 내가 네 생각을 안 해 준다고, 네게 응답하지 않는다고 불평했지? 

그런데, 욥아. 보렴. 

비가 오고 바람 부는 것이 다 나의 주권과 선하심과 자비하심과 지혜 속에 있잖니? 

심지어 메뚜기조차도 내가 다 알고, 통치하고 있잖니? 

마찬가지로, 너의 일 중에 내가 간섭하지 않으신 것은 없단다.”라는 말씀입니다. 

 

천지만물, 자연 현상들이 자연법칙이나 인과법칙으로 운행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 때문에 운행되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바람과 공기와 햇빛과 저 멀리 뛰노는 야생동물들 까지 다 하나님이 일일이 간섭하시고 일하시고 붙들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겠냐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다면,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껏 한숨 쉬며 기도했던 문제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빠져듭니다.

내 문제는 한없이 작아지고, 하나님만 가득해 짐을 느낍니다.(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 이 순간은 그렇습니다. 계속 그럴 거라고 자신하진 못하겠습니다만….^^;;)

이것이 말씀의 파워인 것 같습니다.


주여,

제게 다가와 주시는 주여,

주님의 친절하심에 감사합니다.

주님은 늘 옳으십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살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옳으심에 깊이 뿌리 내리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아들답게, 대장부처럼 살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https://www.youtube.com/watch?v=5Brz-ONZ8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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