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7/23 창 48~50장 "형통,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를 꿈꾸며 사는 것"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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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1/17/23 창 48~50장 "형통,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를 꿈꾸며 사는 것"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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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60회 작성일 23-02-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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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화) 창 48~50장 "형통,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를 꿈꾸며 사는 것"

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창 50장을 묵상하겠습니다.

50장은 요셉이 죽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창세기는 창조 기사와 4명의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제 요셉이 죽으면서 창세기도 끝이 나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요셉 이야기를 형통이란 관점으로 묵상하고 있는데요.

형통이 출세해서 잘 살다가, 행복하게 죽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요셉의 죽음 장면은 그런 것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유언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유언합니다.

“(창 50: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창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서 11장은 요셉의 유언을 믿음의 행위라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 11:1).

믿음은 기본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하지만, 필연적으로 미래를 포함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며 살았습니다.

이런의미에서, 형통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를 꿈꾸며 사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태초에”로 시작하였다가, “입관하였더라”로 끝이 납니다. 

생명의 창조로 시작해서, 죽음(입관)으로 끝이 납니다. 

어떻게 보면, 창세기가 좀 우울하게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미래에 대해 큰 기대를 하게 하면서 끝이 납니다.


이 미래에 대한 기대는 요셉의 인생을 형통이란 관점으로 묵상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요셉은 평생 꿈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꿈을 꾸어서, “꿈꾸는 자”라고 불리었고요.

청년이 되었을 때는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는 자가 되어서, 총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형들을 만났을 때 복수하지 않고 선대했던 것도, 하나님이 그의 가족을 구원하실 일 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죽을 때조차도, 그는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유언을 남깁니다.

요셉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미래를 꿈꾸었고, 죽어서라도 그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기를 바라며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출애굽 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출 13:19)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또한, 요셉의 유골을 가나안 땅 세겜에 장사했습니다 (수 24:32).


생각해보면,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 들”이었습니다.

1)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땅과 자손과 복의 약속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주실 미래의 축복을 꿈꾸며 약속의 땅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언약을 반복해서 믿었습니다(창 15, 18, 22장).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막벨라 굴을 산 것도 약속의 땅에 대한 비전 때문이었습니다 (창 23장).

2) 이삭도 모리아산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리브가 불임이었을 때, 언약을 붙들고 기도하여 자녀를 얻었습니다 (창 25장)

우물 사건에서도 땅을주시고 복을 주실 것을 믿었고 또한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기에게 직접 주시는 언약도 받았습니다 (창 26:24).

3) 야곱도 하란으로 도망가던 길에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언약을 받는데요(창 28장).

그때, 야곱의 반응이 독특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돌아오게 하시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창 28:20-22).

현재(지금 하나님을 만난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니고, 과거(조상들에게 역사하셨던 것)를 언급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행할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년에 요셉의 초청으로 이집트로 내려갈 때도,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를 약속받았습니다.

(창 46: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창 46: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4) 마지막 믿음의 조상인 요셉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습니다.

죽으면서도 출애굽에 대한 꿈을 꾸었고, 출애굽 할 때 자기 유골을 가져가라고 유언했습니다.

요셉이 형통한 것은 높은 지위에 오르고, 출세하고, 아버지와 가족들을 자기 곁으로 집단 이주시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형통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를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통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고리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과거,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포함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형통하는 비결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실 것을 꿈꾸면서 사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미래에 그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에, 형통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나 미래를 꿈꾸고, 미래에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바라보며 사는지 돌아봅니다.

솔직히, 이런 면에서는 아내가 저보다 훨씬 형통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아내는 늘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바라보며, 꿈꾸며 삽니다.

아내에 비해, 저는 좀 더 현재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훨씬 덜 꿈꾸며 사는 것 같습니다.

혹시 꿈꾸지 못하는 것이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저도 오늘부터 더욱 꿈꾸며 살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미래에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묵상하면서, 성령이 오시면 그 나라 꿈꾸게 하신다는 찬양이 떠오릅니다.

저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위에서 성령 충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꿈꾸며 살고 싶습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 나라 꿈 꾸게 하시네 


https://youtu.be/9sAODtApP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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