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2/23 렘40-44장, "42장 요하난의 불순종"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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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8/12/23 렘40-44장, "42장 요하난의 불순종" Publish on August 13,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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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9회 작성일 23-08-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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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예레미야 42장을 묵상하려 합니다. 


오늘 읽을 본문은 나라가 망한 뒤의 이야기입니다.

42장 예언의 역사적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예루살렘 멸망 후, 바벨론이 그다랴(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렘 40:7) 들에 있는 군대장관들과 그들의 사람들이 “바벨론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 를 이 땅 총독으로 세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옮기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 하였다” 함을 듣고"


그다랴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요시야 왕의 신하였던 사반입니다.

사반은 대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을 요시야 왕에게 낭독하고 해석해주어서, 왕이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 아히감도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아힘감은 요시야 왕 때 종교개혁을 이끌었고, 여호야김 왕의 무리가 느헤미야를 처형하려 했을 때도 막아주었습니다(왕하 22, 렘 26). 


그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래 자란 그다랴도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남유다에 조금이나마 빛이 비치려는 순간입니다.

그다랴는 총독이 된 뒤에,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떠나 미스바에서 재건을 주도했습니다.

(미스바는 사무엘이 부흥을 주도했던 역사적인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실낱같던 희망의 불꽃은 무참히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친애굽파였던 군대장관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암살했습니다.

"(렘 41: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너무나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남유다의 역사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2. 그다랴 암살 후, 또 다른 친애굽파 군대장관이었던 요하난이 남은 백성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애굽으로 망명하는 것입니다.

망명가던 도중에 예레미야를 찾아가서, 갈 길과 할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42:3).

하나님은 10일 후에 답을 주셨습니다. 

“(렘 42: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렘 42:12)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끝까지 긍휼히(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이집트로 가지 말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씀에 조차 불순종합니다. 

늘 불순종하던 대로, 이번에도 불순종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도 강제 연행하여 이집트로 내려가 버렸습니다(43:6). 

결국, 불순종한 요하난 일행은 애굽에서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모두 멸망당했습니다.

(참고: 이집트 엘레판틴 섬(나일강 상류 아스완 댐 부근)에는 망명한 유대인들이 세운 유대교 신전이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https://thescripturesays.files.wordpress.com/2016/04/24-map-jermiah-taken-to-egypt.png)

오늘 장면은 참 무거운 내용이지만, 이 말씀을 통해 몇 가지 묵상을 하게 됩니다.


1. 내 뜻에 하나님이 따라오시길 바라지 말라.

“(렘 41:17)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무렀으니”


게롯김함은 “김함의 여관”이란 뜻입니다. 

요하난과 그 일행은 이미 애굽으로 가려고 작정했고, 애굽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베들레헴 근처 게롯김함(김함 여관)에 도착했고,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했습 니다. 


이게 뭔 말입니까? 

요하난 일행은 이미 마음에 자기들이 갈 길을 확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주길 부탁했습니다.

자기의 계획을 세워둔 상태로, 하나님이 그 계획을 지지해 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계획을 따라와 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애초에 하나님의 뜻을 따를 생각 따윈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하는지 돌아봅니다.

이미 제가 미리 계획하고 있으면서, “제 생각과 계획대로 이뤄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은지…….

제 뜻을 정해놓고 하나님이 그 뜻을 따라주시길 원하는 것이 아닌지….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나를 항복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제 뜻이 먼저인지, 하나님의 뜻이 먼저인지 다시 돌아봅니다.

제 생각과 계획에 집중하느라, 하나님 말씀에 귀를 막고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2. 순종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렘 42: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지금 요하난 일행은 말은 기가 막히게 잘하고 있습니다.

청종한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말만 들으면, 너무나 신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의 뜻에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애굽에 내려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하나님의 뜻이 자기 계획과 맞지 않자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에게 순종은 하나님의 뜻이 자기 뜻에 맞을 때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의 모습도 이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저의 전제와 고집을 내려놓고 기도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3. 응답이 늦을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하난의 일행은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예전에, 묻지 않았을 때도, 듣기 원치 않았을 때도, 하나님은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메시 지를 주셨는데요.

그런데,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조용하십니다.

열흘이나 지난 후 답을 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열흘을 기다리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마음을 가질 시간을 주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열흘은 잘못된 계획을 세웠다손 치더라도,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기간이 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러지 않았고,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불행한 결말을 맞고 맙니다.


제게도 아직 응답을 기다리는 기도 제목들이 있습니다.

가끔은 기다리는 것이 힘들고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하난의 모습을 보면서, 기다림이 축복이요,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순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을, 현대를 살아가는 저에게 순종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것인지…

문득 “순종”이란 영화가 생각납니다. 

나를 버리고,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았던 선교사님들처럼, 저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e4HZ2ztN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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