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9/23 겔 14~17장, “16장 음란한 여인 예루살렘”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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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8/19/23 겔 14~17장, “16장 음란한 여인 예루살렘” Publish on August 20,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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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4회 작성일 23-08-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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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에스겔서 16장을 묵상하려 합니다. 


에스겔서도 52장이나 되기 때문에, 문맥을 파악하며 읽는 것이 좋습니다.

16장은 “범죄한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내용(4~24장)”의 일부입니다.

16장은 63절이나 되는 긴 장 인데요….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임하여 우화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1~2절). 

“예루살렘이란 이름의 버림받은 여자아이를 구원하셔서 영광스러운 왕후로 만들었더니, 가증한 음행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버림받은 아기 예루살렘을 돌봐주심

예루살렘이 막 태어났을 때,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하고 버려져 있었습니다(16:4-5). 

그런데, 왕이 피투성이 같은 갓난아기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서 살려냈습니다.

예루살렘은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그 뒤에, 점점 성장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비참한 상태였습니다(16:7). 

그 무렵에 왕이 그 부근을 지나가다가 이 여자아이를 다시 보았고, 사랑하게 되었고, 아내로 삼았습니다.

사랑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겔 16: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왕은 아내(왕후)에게 온갖 귀금속으로 장식해 주었고, 그 화려함과 명성은 외국까지 소문이 났습니다.

“(겔 16:14)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까지는 마치 디즈니 만화 영화같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2. 뻔뻔한 창녀처럼 행동하는 예루살렘

하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아름다운 동화에서 막장 드라마로 바뀝니다.

예루살렘은 뻔뻔한 창녀처럼 행동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유혹하여 음행했고, 자기 몸을 사람들의 노리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16:15).

자기 자녀들까지 데려다가 우상의 제물로 바쳐 불살라 죽였습니다(16:20-21).

애굽, 블레셋, 앗수르, 갈대아 등을 오가며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예루살렘의 행동은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22절)”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음욕은 차지 않았고, 오히려 부족하게 여겼습니다(16:28-29).

예루살렘의 행위에 비교한다면, 북쪽에 살았던 언니 사마리아는 예루살렘이 지은 죄의 절반도 죄 짓지 않았고, 동생 소돔도 그만큼 범죄치는 않았습니다(16:48-51). 

예루살렘이 얼마나 심하게 타락했는지, 언니와 동생은 차라리 의롭게 여겨질 정도였습 니다(16:52). 


3. 배은망덕하게 행동하는 이유

어떻게 이렇게 배은망덕할 수 있을까요?

22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겔 16:22)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그 이유는 기억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벌거벗고, 피투성이로 발짓하던 것이 바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만, 제 가슴은 그것을 기억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자꾸 무뎌지고 있고,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아니, 저의 모습은 예루살렘보다 더 악합니다. 

사마리아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여호와라고 섬기다가 앗수르에 망했습니다 (왕하 12장).

소돔은 동성애 같은 성적 범죄를 저지르다가 불 심판을 받았습니다(창 19장).

예루살렘이 사마리아나 소돔보다 악한 것이, 이런 심판의 내용을 알고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더 알수록 책임도 더 중해집니다. 

그렇기에 저는 예루살렘보다 더 악합니다.

저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역사도 알고 있고, 구약에다 신약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모습은 자꾸만 세상에 관심을 두고 있고, 사람을 의지하려 하고, 물질과 권력과 자존심의 우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보다 제가 더 악합니다…….

4. 회복의 소망

그런데, 이런 저에게도 소망을 주십니다. 

60절 이하는 다시 영원한 언약을 세워서 회복시켜 주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겔 16:60)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하나님은 매번 언약을 깨고 있는 이스라엘과 다시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보통 언약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을…

이 언약은 예레미야 31장과 에스겔 36장에 나오는 “새언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님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새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바울은 자신을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 인식했습니다.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바울이 선교를 위해 죽도록 충성한 것은, 새언약이 자신에게도 적용되었고, 이제 자신이 새언약의 일군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바울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새언약의 일꾼 되는 것입니다.


아~. 이 약속을 저에게도 적용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의 범죄함을 알수록 더욱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의 악함을 깨달을수록 더욱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제 마음이 굳어 있음을 느낄수록 더욱 새 영과 새마음을 갈망하게 됩니다. 


주여, 

저를 살리신 그 사랑을 오늘도 기억하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을 위해 일하는 새언약의 일꾼 되게 하소서.

예수님과 십자가만 바라보며, 나의 모든 것 드리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hQhY2GIj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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