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3/23 겔 29~32장, “29장 애굽에 대한 예언”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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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8/23/23 겔 29~32장, “29장 애굽에 대한 예언” Publish on August 23,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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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4회 작성일 23-08-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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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에스겔서 29장을 묵상하겠습니다.
 25~32장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부분인데요,
그중 거의 절반(29~32장)이 애굽을 심판하는 내용입니다.
1) 남유다의 멸망 원인은 우상을 숭배하고, 주변 강대국들을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 두로의 멸망 원인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두로 왕은 “나는 신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겔 28:2).
3) 오늘 통독하는 애굽의 멸망 원인도 “교만”과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는 것처럼 속인 죄” 때문이었습니다.
 
I. 애굽의 교만
애굽 왕도 두로 왕처럼 자신을 신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겔 29:3)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애굽 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 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내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본문의 큰 악어는 원래는 “거대한 바다 괴물”을 의미하는데요.
성경에서는 뱀, 용, 라합, 리워야단 등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바로는 지금 자신은 “세상 누구도 제압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하고, 힘센 존재” 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바로 자신이 나일 강을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천지 만물을 창조했습니까?
하나님이잖아요.
바로가 하나님의 자리를 은근슬쩍 차지하고 있습니다.
 
2. 갈대 지팡이
“(겔 29:6) 애굽의 모든 거민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겔 29:7)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로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애굽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유혹했고,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의지가 될 수 있다고 속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의 실상을 폭로합니다.
애굽은 갈대 지팡이라고 하십니다.
겉으론 잘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실은 재질이 갈대입니다.
조금만 힘주면 바로 부러져 버립니다.
부러지면서 손을 베게 만들고, 넘어져 다치게 만듭니다.
말만 지팡이일 뿐, 전혀 의지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니 의지하면 큰일 나는 존재입니다.
 
II. 애굽의 심판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시는데요.
심판은 두 가지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1) 나일 강의 큰 악어를 사냥하십니다.
바로는 자신을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 같은 큰 악어”라고 뽐냈는 데요.
그러나 하나님은 “한낱 악어 한 마리에 불과하다”고 평가하십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악어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능숙한 악어 사냥꾼에게는 좋은 사냥감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 악어를 갈고리로 아가미를 꿰어서 물 밖으로 끌어내십니다.
그래서 짐승과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다고 하십니다(29:3-5).
 
2) 애굽 땅을 사막과 황무지로 만드십니다.
사막이나 황무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땅으로 만들어 버리십니다(29:8-9).
더구나 애굽 사람들은 각국으로 흩어버리셨다가, 40년 뒤에야 돌아오게 하신다고 합니다(29:12-13).
(여기에서 40년은 문자적인 40년 일수도 있지만, 인고의 세월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을 했듯이...)
 
결국, 애굽은 바벨론에게 정복당하고, 바벨론 군대에 철저하게 노략 당하게 됩니다.
“(겔 29:19)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붙이리니, 그가 그 무리를 옮겨가며,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수가 되리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00년을 종노릇했지만, 그것을 잊어버리고, 틈만 나면 애굽을 의지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의지할수록 손은 찔리고, 넘어져 다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실제로 남유다의 마지막 세 왕인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모두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하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만약 남유다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벨론의 지배에 순종하고, 순순히 포로로 잡혀갔다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요.
 
애굽을 심판하는 본문을 읽으면서, 몇 가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애굽도 두로처럼 “나는 신이다”라고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죽으면서도 하나님이라 말하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런데 한심한 것은, 사람은 설령 죽더라도 자기가 신이라 말하기를 포기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미 선악과를 따먹을 때부터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던 존재였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을 양육하다 보면, 혼이 나는데도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요.
아이라도 자기 자존심을 세우는 거지요.
 
애굽을 보면서,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도 하나님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고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저도 높다고, 이제 죄나 회개 같은 것은 제게 별로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은지….
나는 아무 공로 없으니, 그저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하기에 자존심 상해하고 있진 않은지…….
아직도 내 맘대로 하려 하진 않는지….
주님,
날마다 저를 심판하시고, 제가 신이 아님을 인정하게 해주시옵소서.
 
남유다는 애굽을 의지하다 망했습니다.
저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인맥도, 재물도, 실력도, 세상적인 가치 같은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진 않는지…
하나님만 의지하기 원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고백했던 것처럼, 저도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애 3:26).
하나님만 의지하고, 잠잠히 기다릴 줄 아는 “영적인 실력”을 키워나가기 원합니다.
 
3. 그래서 날마다 회개하고, 날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 원합니다.
매일 실패하고 넘어지는 저 자신을 봅니다.
그렇지만, 넘어질 때마다 회개하고, 벗어날 때마다 되돌아오기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과 함께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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