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7/23 미 6~7장, “6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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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9/17/23 미 6~7장, “6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Publish on September 18,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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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0회 작성일 23-09-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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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미가서 6장을 묵상하겠습니다.

미가서 6~7장은 미가의 세 번째 설교입니다.


I. 하나님의 고소

6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판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고발하셨습니다.

산과 땅이 증인으로 채택되었습니다(6:1-2).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피고로 소환되었습니다.

기소 내용이 6장에 명백하게 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나 미가서의 문맥이나, 다른 선지서의 내용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 기소 내용일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잘못한 것이 무어냐? 내가 저를 괴롭힌 적이 있느냐?”고 질문 하십니다 (6:3).

“도대체 나를 떠나고 우상을 섬기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4~5절에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적이 없고, 오히려 구원해 주었다는 역사적인 증거들을 제시하십니다. 

1)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해방해 주셨고, 

2) 지도자가 없을 때 모세, 아론, 미리암같은 지도자를 세워 주셨고,

3) 모압 땅에서 발락 왕이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을 때도 오히려 축복하게 하셨고,

4) 광야 길에서 늘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긴 커녕, 너무나 세밀하게 보호하고 인도하셨다는 변론입 니다.


하나님이 오늘 저를 보시면서 뭐라 하실까요?

제가 재판정에 피고로 선다면, 어떤 기소를 받게 될까요?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내게 해 주신 것이 없어.

잘한 건 내가 다 했고, 못한 건 하나님이 안 해 주셔서 그런 거야.” 하고 투덜거리고 있진 않은지….


II. 하나님의 고소에 대한 이스라엘의 항변

6~7절은 하나님의 고소 후에 이스라엘이 진술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고소와 증거 제시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단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 마음이 풀어지실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마음을 풀어주려고 내놓는 아이디어들이 기가 찬 내용입니다.

1) 번제물로 1년 된 송아지를 바칠까?

2)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기름을 좋아하실까?

3) 내 맏아들을 제물로 바칠까?


이 아이디어들을 풀어서 설명하면요.

1) 1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바치는 것은 율법에 명시된 것입니다.

율법만 지키면 될까? (율법주의로 나갈까?)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나 의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송아지를 바치면서 자기 마음도 함께 바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율법의 목록을 지키면 의무를 다하는 그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완전 율법주의입니다. 


2)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기름은 엄청난 양의 제물들입니다.

마치 솔로몬은 소를 잡아서 일천 번째를 생각나게 할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재물이 적으시나요? 더 많이 바칠까요?” 하는 것입니다.

Mammonism(물질주의)적 아이디어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을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지요.

이미 선지자들은 헛된 제사와 제물들을 하나님이 원치 않는다고 여러 차례 얘기하고 있습 니다.

미가와 동시대에 예언했던 이사야서에는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아라. 내가 가증 히 여기고 있다.”라고 하셨고요(사 1:13),

아모스서에서도 “너희가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고 있지만,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고 있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암 4:4).


3) 맏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완전 코미디입니다.

이것은 이방 풍습입니다.

모압이 몰렉에게 제사 지낼 때 자녀를 인신 제물로 바쳤습니다.

우상숭배에선 최고의 제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그런 식으로 바치겠다고 합니다.

완전 혼합주의(syncretism)입니다.

세속주의 물결이 교회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현실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III.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1. 공의

미가서의 현실은 참담합니다.

미가는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압제하며,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재판정은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져 있다”라고 목이 터지라 외쳐왔습니다.

아모스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암 5:24).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2. 인자(헤세드)

성경에서 말하는 인자는 “언약에 기초하기 때문에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너무 길면 그냥 “사랑”이라 생각하셔도 됩니다.

호세아에게서도 헤세드가 강조되었었지요. 

인자를 사랑하는 것을 요즘 말로 바꾸면, “한결같은 사랑으로 자비를 베풀며(쉬운말 성경),” “긍휼을 사랑하며(우리말 성경),”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공동번역)”입니다.

제 삶에 적용하자면, 저에게 주어진 삶을 늘 감사할 줄 알고, 주변 사람들과 한결같은 사랑 의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삶입니다.


3.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

이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네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쉬운말 성경)”입 니다.

겸손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겸손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를 보면, 점점 겸손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최대한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 살다 보니, 저도 물 들어갑니다.

적당히 잘난 척해야 대우받는 세상에 살다 보니, 저도 자꾸 저를 드러내려 합니다. 

오늘 이런 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려 애써야겠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이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증명이 됩니다.

저도 목사이니, 얼마나 많이 말하고, 여러 신앙 행위들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하는 말로 저의 신앙이 증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 말을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신앙 행위들을 통해 삶이 하나님을 닮아갈 때, 그때에야 그 행위들이 경건의 통로임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지 못한다면, 옳은 일을 행하며 살지 못하고,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다면, 나의 행위들은 종교 행위일 뿐이었고, 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 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예배하고, 엄청난 헌금을 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성경을 백독을 해도 쓸모가 없습니다.

여전히 옛 사람이 살아있고, 옛 기질이 활동하고, 옛 생각과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닮게 하소서.

삶 속에서 공의와 인자와 겸손을 실천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k2m9rH-dQ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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