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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9/21/23 학 1~2장, “1장 성전 재건” Publish on September 22,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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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3회 작성일 23-09-2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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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학개서를 묵상할 차례입니다.

오늘부터는 시대가 바뀝니다.

어제까지 읽은 선지서들은 “분열 왕국 시대”에 쓰인 예언들이었습니다.

남유다가 망하기 전에 예언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BC 586년에 “포로 시대”가 시작됩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 정복되고, 포로로 잡혀갔던 시대입니다. 

이 기간에 쓰여진 예언서가 에스겔과 다니엘서입니다.

그리고 538년부터는 포로 귀환 시대입니다.

역사서인 에스라, 느헤미야에 보면, 포로들이 귀환해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이야기가 자세히 나옵니다.

그 기간에 활동한 선지자가 학개, 스가랴, 말라기인데요. 

학개와 스가랴는 성전을 재건하는 시기에 활동했고, 말라기는 성벽 재건 후에 활동했습 니다.

 

학개 선지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름이 학개(뜻: 명절)란 것을 제외하곤, 그의 가문이나 출신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습 니다.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의 뒤를 이은 다리오 왕 2년(BC 520)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합니다. 

학개는 그 말씀을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전합니다(1).

(다리오 2년 6월 1일(학 1:1)부터 9월 24일(학 2:20) 사이에 학개에게 메시지가 임했습니다. 그러니, 학개서는 아주 짧은 기간에 쓰여진 셈입니다). 


학개 선지자가 성전 재건을 예언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BC 538년에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가 포로 귀환 칙령을 내렸고, 1차 포로민들 5만 명이 스룹바벨 총독의 지도아래 귀환했습니다.

BC 536년에 성전 재건에 착공했지만,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이 중단되었 습니다(스 3,4장).

BC 520년, 성전 공사가 중단된 지 16년만에, 학개 선지자가 일어나 성전 재건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I. 이유와 핑계 사이

(학 1: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16년 전, 포로로 잡혀있던 백성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해도 좋다는 칙령입니다.

하지만, 이 칙령을 듣고 모두가 귀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벨론 땅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5만 명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벨론에서 태어나 이민 2세대가 1000km넘는 길을 걸어서 부모님의 땅으로 돌아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돌아오자마자,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기초를 놓았었습니다(에 3:8~13). 


하지만 곧바로 어려움을 만납니다.

기초를 놓은 직후에, 인근의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성전 건축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에 4장). 

그들이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전 건축을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바벨론에서도 열심히 신앙을 지켰고, 돌아오겠다고 결심했고, 와서도 성전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주변의 사마리아는 성전 건축을 반대했고, 당장 황무지가 된 땅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양식을 만드는 것도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뭄으로 소출이 보잘것없었습니다(1:10-11). 

왕은 성전 건축을 중지시키는 칙령을 내렸습니다(에 4:23).

이렇게 상황이 어렵다 보니, 좀 더 좋아지면 하자고 미루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간 것입 니다.


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제게도 마음의 성전을 세우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나 제 마음의 성전을 세우는데 열심을 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있진 않은지, 현실과 타협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II. 우선순위

“(학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 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상황에 타협한 것은 결국 “상황이냐, 하나님이냐”라는 우선순위의 문제였습니다.

우선순위가 밀리면, 할 수 없는 이유가 수도 없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앞서면, 못할 형편에서도 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됩니다.

우선순위 1번에 두고 길을 찾으려고 애쓰다 보면, 길이 보입니다.


예전에 솔로몬 성전은 백향목을 수입해서 만들었습니다.

자랑스러운 과거였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건축 재개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나무를 수입할 재정도 없고, 수입할 경로를 찾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라고 합니다.

백향목 수입할 필요없다고 하십니다.

그냥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지역이잖아요.

광야엔 키 크고 곧은 나무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선순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내 삶의 중심, 내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면, 다른 것들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줄 믿습니다.


III. 성령

학개의 메시지는 “성전공사를 재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이고,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실행하긴 어려운 말입니다. 

저도 회의를 하다 보면, “말은 참 맞는 말인데, 결국 상황 때문에 못 하겠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 당시 사람들이 다시 성전 건축에 헌신하기로 했을까요?

(학 1:13)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학 1: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마음을 감동시키고 자극하시고 그들의 열정에 불을 붙이셨다는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흥분시키셨고, 감동시키셔서 성전 재개가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동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마음의 감동은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라는 말씀에서 일어납니다. 

이 말씀이 왜 그들에게 감동을 줄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아무리 힘든 일을 만나도, 그 어떤 방해를 받아도 힘차게 도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 마음도 감동시켜 주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제 마음에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을 날마다 세워나가기 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vRnED9CG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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