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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9/22/23 슥 1-2장, “1장 돌아오라, 돌아가리라.” Publish on September 22,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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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2회 작성일 23-09-2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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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슥 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구약의 제일 마지막 시대가 포로귀환 시대인데요.

이때 쓰인 역사서가 에스라, 느헤미야서이고, 이때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학개와 스가랴, 말라기입니다. 


BC 538년에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가 포로 귀환 칙령을 내렸습니다. 

적어도 100만 명은 잡혀 갔을 텐데, 겨우 5만명 만 스룹바벨 총독을 따라 귀환했습니다. 

이것이 1차 포로 귀환입니다.  

BC 536년에 성전 재건에 착공했지만,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이 16년간 중단되었습니다(스 3, 4장).

BC 520년, 페르시아의 4대 왕인 다리오 왕 2년에 성전을 재건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BC 516년에 제2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스가랴는 학개와 동일한 시대에 예언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학개는 주로 물리적 성전을 재건하는 사역에 집중했고, 스가랴는 성전 재건의 영적 의미를 보여주는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스가랴서는 소선지서 중에서 가장 길고, 환상과 예언이 많이 나오는 성경입니다. 

1. 전반부(1-8장)는 초기에 주어진 환상들 8개가 나옵니다.

1) 붉은 말을 타고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사람 환상 (1장)

2) 네 뿔과 네 명의 대장장이들 환상 (1장)

3) 측량줄을 잡은 사람 환상 (2장)

4)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높여주는 환상 (3장)

5) 순금등대와 두 감람나무 환상 (4장) 

6)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 (5장)

7) 에바 속의 여인 환상 (5장)

8) 네 병거 환상(6장)

환상이 많아서, 에스겔, 다니엘과 함께 구약의 3대 묵시록이라 불립니다.


2. 후반부(9-14장)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 18개가 나옵니다. 

메시아 예언은 초림과 재림이 함께 나오고 있는데요. 

특히 복음서와 요한 계시록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순, 종, 나귀 입성, 선한 목자, 은 30, 면류관등을 포함해서 71 번이나 신약에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스가랴서의 세 가지 핵심 포인트는 첫째,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둘째, 성전 재건 을 격려하고, 셋째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할 1장의 핵심은 다시 돌아오라는 부르심입니다.


I. 이스라엘이 직면한 어려움

이스라엘은 얼마 전에 포로에서 귀환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그 후손들까지 고통당하다가, 70년 만에 겨우 귀환했습니다.

돌아오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어겨서 이렇게 징계를 받았으니, 이제 앞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자”고 결심하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돌아오니까, 현실의 벽은 높았고, 다시 죄악된 본성에 지배당하며 살고 있었 습니다. 

사실, 귀환민들 입장에서 보면, 그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을 4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1) 정치적 어려움입니다. 

포로 귀환할 당시에 예루살렘 지역은 행정구역으로는 페르시아 제국의 분할 구역의 하나인 예후드(Yehud) 지방에 속해 있었고, 사마리아의 행정적 지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귀환민들이 돌아오면서 예후드 지방이 사마리아의 관할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사마리아 입장에선 달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전과 성벽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는 끈질기게 반대하고 방해했습니다.


2) 경제적 어려움입니다. 

당시 예후드 지역은 멸망 후에 70년간 버려졌던 황무지 땅이었습니다. 

더구나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 속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소출이 변변찮았고, 당연히 경제적인 빈곤을 겪어야 했습니다.


3) 사회적인 어려움입니다. 

“귀환민들”과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남아있던 자들”간의 긴장이 있었습니다. 

또한, “북이스라엘 멸망 후에 남쪽으로 피난 온 사람들(북이스라엘 피난민)”에 대한 문제 도 있었습니다. 

즉 복잡한 갈등 구조 속에 있었습니다. 


4) 종교적인 어려움입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백성들은 그동안 주변 이방 종교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고,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주변 이방 종교와 하나님 믿는 신앙이 혼합되는 문제(혼합주의, syncretism)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백성들에게 성전을 재건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었 습니다. 

현실의 고통 속에서 실망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고, 패배주의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II. 하나님의 개입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이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이들에게 개입하시고 선자자를 통해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 복음이요, 은혜입니다. 

스가랴 1:1-6은 그런 상황 속에서 주신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스가랴

(슥 1:1) 다리오 왕 이 년 팔 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 랴에게 임하니라.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은 스가랴입니다.

스가랴는 성경에서 굉장히 흔한 이름입니다.

성경에 스가랴(혹은 사가랴)가 29명이나 나옵니다.

그중에 선지자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이고, 베레갸의 아들입니다(1:1).

참고로, 에스라도 잇도의 손자입니다(스 5:1, 6:14).

잇도는 1차 포로귀환자들과 함께 돌아온 22명의 제사장 중 한 명입니다(느 12:4, 16).

다시 말해, 스가랴는 청년 제사장인데, 선지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스가랴”는 단순한 족보가 아니라, 그 이름에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워드 플레이(word play)입니다.

“잇도”는 적절한 때(timely) 라는 뜻이고, “베레갸(바라크+야)”는 하나님이 축복한다는 뜻이고, “스가랴(자카르+야)”는 하나님이 기억하다는 뜻입니다. 

즉, 세 사람의 이름을 연결하면, “하나님이 적절한 때에 축복하실 것을 기억하라.”는 메시 지입니다. 


2. 이스라엘의 희망

(슥 1:3)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 만군의 여호와(LORD Almighty)

하나님은 자신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히브리어로 “여호와 체바오트”라고 합니다. 

“체바오트”는 군대, 혹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전쟁을 수행하는 무리입니다. 이 무리는 사람 뿐 아니라, 우주 전체나 천사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즉 만군의 여호와란 말은 하늘과 땅의 절대 권력을 가지고, 그 뜻을 시행할 수 있는 절대 주권자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겉으로 보면, 나라가 망했고, 겨우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참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만군의 여호와로 존재하시고, 그런 비참한 백성들을 포기치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존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망 속에서 빛을 보게 되는 첫 번째 희망 입니다. 


2) 돌아오라

하나님은 메시지를 주시길 “너희가 나에게 돌아와라. 그러면, 나도 너희 백성들에게 돌아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전 역사를 기억해 봐라. 과거의 실패한 역사를 기억하고, 반면교사를 삼아라” 라고 가르침을 주십니다.

옛날 조상들은 하나님을 떠났지만, 선지자들의 부름에 결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같은 선지자들이 바벨론 포로를 거듭 예언했지만, 결코 듣지 않았고,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것은 모두 조상들의 불순종 탓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길, “너희가 나에게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거듭거듭 반역하고, 불순종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포기치 않으시고, 끝까지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너희도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구원받는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가 절망 속에서 빛을 보게 되는 두 번째 희망입니다. 


저는 목사이고, 하루 삶의 대부분을 교회와 연관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의 마음과 관심은 어디에 가 있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제 마음을 보신다면,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두렵습니다.

혹시 제 마음은 구부러져 있지 않은지, 찢기고 상해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은혜의 강물에 목이 말라 지쳐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지금이라도 주님께 돌아가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에 부어주실 회복과 축복을 사모하며 살기 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M8GwdasL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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