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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9/27/23 슥 11-12장, “12장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Publish on September 28,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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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6회 작성일 23-09-2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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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슥 12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스가랴서 후반부(9-14장)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이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12장은 예루살렘의 구원을 예언하는 부분입니다.

11장은 무서운 예언이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에 대해 예언하면서, 은총과 연락(연합)이라는 두 막대기들을 꺾어버린다는 무서운 심판을 예언하셨는데요(슥 11:10, 14).

12장에서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신다는 회복의 메시지를 주시고 있습니다(슥 12:10).

천하만국이 예루살렘을 치려 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게 되고, 예루살렘 거민이 다시 예루살렘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은총을 부어주신다는 내용입니다.

이 예언의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12장 예언의 배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스가랴는 성전 재건 공사를 배경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할 때,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은혜와 축복을 베푸신다는 내용입니다. 

 

1. 예언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누구신가?

(슥 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


12장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란 것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기에, 만물을 통치하실 권한과 능력도 가진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5절에서는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소개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내용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호와 체바오트)는 스가랴서에서 52번이나 나오고 있는 중요한 이름입 니다.

만군은 사람 군대 뿐 아니라, 온 우주와 천군천사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즉 만군의 여호와란 말은 하늘과 땅의 절대 권력을 가지고, 그 뜻을 시행할 수 있는 절대 주권자라는 의미입니다.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방해하려는 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2.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슥 12:2)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국민에게 혼취케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미치리라.

(슥 12:3)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무릇 그것을 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슥 12:4)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아보고 모든 국민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 술잔은 작지만, 작은 잔이라고 별것 아니라 생각하며 술을 부어 마시다보면, 어느새 술에 취하게 됩니다. 작은 잔이지만 힘이 있습니다.

* 돌도 겉으로 보기엔 별 것 아니게 보이지만, 자기 힘을 과시하려고 번쩍 들었다가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리를 다치거나 발을 찍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잔이나 돌처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치려하는 누구든지 (천하만국 이라도) 크게 상하게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한다면, 말은 놀라게 만들고, 말의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린다고 하십니다.

또한, 그 말 탄자도 미치게 만들어 버린다고 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잔과 돌의 이미지를 사용하시고, 말과 군사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계획을 명확하게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명기에서 언약을 어길 때 어떤 저주를 받는지 말씀해주신 부분을 연상시킵니다.

(신 28:28)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침과 눈 멂과 경심증(정신착란증)으로 치시리니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언약을 어기는 자들은 미치고 눈이 멀고, 정신이 이상하게 되는 저주를 받는데요.

하나님의 언약을 깨려고 달려드는 이방인들도 비슷하게 눈이 멀고 정신이 이상해지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탐욕과 분노와 시기심으로 눈이 멀어지고, 정신이 나가버리는 것은 자기들이 죄악에 빠져들면서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인 셈입니다. 


3. 예루살렘의 강력함

(슥 12:5) 유다의 두목들이 심중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거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 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찌라.

(슥 12:6) 그 날에 내가 유다 두목들로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국민을 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리라.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멀리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언약 안에 거하는 자들은 축복을 받습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고, 세상가운데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화로나 횃불은 작지만 강력한 힘이 있는 물건들입니다.

작은 불을 담고 있지만, 나무나 곡식 단에 불이 옮겨 붙으면 삽시간에 전부를 불태울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스라엘은 크기가 작은 나라요, 숫자가 작은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토록 강력한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나무가운데 화로”처럼, “곡식단 사이의 횃불”처럼 사용하 시기 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화로와 횃불로 삼아 세상을 복음의 불로, 성령의 불로 활활 태우기 원하 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전하는 사랑의 불씨로 활활 불타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으로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횃불로 환하게 밝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깜짝 놀라고 충격 받아야 합니 다.

예루살렘(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반대하던 자들은 모두 멸망 받아야 합니다(슥 12:9).


그런데 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러지 못한 제 자신을 돌아보면, 얼마나 한심한지…

저 자신도 저를 보며 깜짝 놀랄 지경입니다.

주여, 저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하소서.


4.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

(슥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런데 이런 복음 정복은 인간적인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언이 9절에서 끝났다면, 애국주의나 십자군 정벌 같은 일이 정당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방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의 예언은 세속적인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광과 승리는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통해서 가능해 집니다. 

외아들을 잃고 애통하며 맏아들을 잃고 통곡하는 듯 한 심령으로 가능해 집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9절에서 10절로 넘어가는 것이 이상해 보이고, 이해가 되지 않습 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눈으로 보면, 이 예언이 이해가 됩니다.


제 속에는 얼마나 “은혜를 구하는 영”과 “용서를 비는 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주여, 제 속에 “은혜의 영과 용서를 구하는 영을 부어 주소서.

저는 용서받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죄인입니다. 

또한, 은혜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자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죄의 은총을 부어 주시고, 새롭게 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고, 새롭게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을 보여 주시고, 새 힘을 불어넣어 주소서.  

  

5. 그들이 그 찌른바

누가 예수님을 찔렀습니까?

로마 군인 한 사람이 찔렀습니다(요 19:33-34).

그러나 예수를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도, 예수님을 모욕하며 침 뱉은 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도록 압력을 가한 유대 지도자들도, 사형을 언도한 본디오 빌라도도 예수님을 찌른 공범들입니다.


그리고 저도 공범입니다.

저도 죄인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입니다.

저는 단지 십자가의 구경꾼이 아닙니다.

제가 바로 예수님을 찌르고 못 박은 장본인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이 부어지는 이유는, 예수님을 못 박은 자가 바로 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제대로 바라볼 때, 마음속에 은총을 구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통하고, 통회하고, 참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듯이 슬프고, 맏아들이 죽은 듯 한 눈물이 제 속에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은 어떠한지 들여다봅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어떤 마음인지…

굳어버리고, 단단해져 버린 마음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 마음이 물처럼 녹아져서,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애통하고 눈물 흘리는 마음이 되길 소망합니다.

지금 제 속에 은혜를 간절히 원하고, 다시 은혜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샘솟듯 솟아나길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Hx8j7_3x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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