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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9/29/23 말 1~2장, “1장,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Publish on September 29,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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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7회 작성일 23-09-2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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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 드디어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를 읽을 차례입니다.

오늘은 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말라기는 책의 순서로 가장 마지막 책이기도 하지만, 시대적으로도 가장 마지막 책입니다.

말라기 이후에는 400년간의 침묵시대(신구약 중간기)가 이어집니다.

이때는 포로귀환 시대 마지막 부분입니다.

BC 516년에 총독 스룹바벨이 1차 귀환민들을 이끌고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당시 선지자는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였죠.) 

그리고 BC 444년에 느헤미야가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3차 귀환민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고, 신앙 개혁 운동을 주도하면서,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을 위해 힘썼습니다. 

BC 432년에, 12년간의 사역을 끝내고 페르시아로 잠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에 느헤미야가 돌아와 보니, 영적으로 현저히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신앙 운동을 일으켜서 영적 회복을 위해 애썼습니다.

말라기서는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돌아갔을 때(BC 432-425), 영적으로 타락했던 시기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라기서에는 느헤미야가 직면했던 영적 타락의 문제가 그대로 지적되고 있습 니다.

예를 들어, 부패한 제사장(말 1:6-2:9, 느 13:1-9), 십일조와 봉헌 제물에 대한 무관심(말 3:7 -12, 느 13:10-13), 이방인과 통혼 문제(말 2:10-16, 느 13:23-28)등 입니다. 


말라기 시대에 백성들이 타락했던 큰 이유는 형식주의와 신앙의 회의입니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백성들의 어려움도 이해가 됩니다.

이들은 먼 길을 걸어서 고향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직면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성전과 성벽 재건을 포기하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재건할 때, 영적 지도자들은 “모든 나라의 보배가 다 성전으로 올 것이 라고, 은과 금도 다 하나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성전의 영광이 나중 영광보다 클 것이다”라는 약속의 말씀도 주었습니다(학 2:7-9).


그런데 막상 성전을 완공했는데, 나중에 성벽까지 완공했는데도,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전과 성벽만 지으면 인생이 역전되고, 팔자가 펼 줄 알았는데(!), 아닌 겁니다.

그래서 “성전 지어도, 성벽을 지어도 소용없네.” 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재림 때 성취될 예언인데, 김칫국을 마신 거지요.)

그래서 겉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지만, 속마음은 하나님을 떠나는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형식주의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때 말라기가 나타나서 예언했습니다.

말라기서는 6개의 논쟁(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말싸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은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1)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1:1-5) 

2) 제사장이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1:6-2:9)

3) 백성들이 성소를 더럽히고, 이방인과 결혼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2:10~16)

4) 백성들이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고 하나님을 비방하고 있다. (2:17~3:5)

5) 너희가 하나님께 돌아오고 싶다면,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보아라. (3:6~12)

6) 너희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하지만, 나는 언약의 사자를 보낼 것이다. (3:13~4:6)


1장에는 이스라엘의 잘못이 여러 가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했습니다.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먼저, 하나님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종교적인 집단인 제사장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평가가 충격적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멸시한다고 하십니다.

제사장은 그 사명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메신저(사자)입니다(말 2:7).

​그런데 이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백성들을 타락으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베드로는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라 했습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이것을 신학 용어로는 만인제사장설이라고 합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 앞에서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하고, 세상에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죄악을 붙들고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저는 말씀을 맡은 자로서,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하나님에게로 잘 이끌어야 합니다.

이 말씀 앞에서 참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저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2.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 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여전히 열심히 예배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만 예배했습니다.

속마음은 없고, 형식만 차렸을 뿐입니다.

그러니, 대충대충입니다.

하나님께 부정한 떡을 올렸고, 절뚝이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쳤습니다(1:7-8).

흠 없고 온전한 것은 비싸니, 팔아서 돈을 벌거나, 자기가 먹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바치긴 바쳐야 할 것 같으니, 부정한 것을 바쳐서 시늉만 하려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지도 못할 것을, 주고도 욕먹을 것들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쓰레기통같이 되었습니다.

성전에 나와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다가, 돌아서면 세상적으로 살고, 우상을 섬기며 사는 모습에,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드리는 예배는 어떤 모습일까 돌아봅니다.

하나님은 예배한다고 무조건 받으시는 게 아니라 합니다.

어떤 제물은 헛되이 불사르는 것이라 하셨고,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한탄 하셨습니다. 

마치 이사야서에서 너희가 성전 마당만 밟는 것일 뿐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사 1:12).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마음 다해 전심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 51:17)”고 했습니다.

전심으로 예수님을 부르기 원합니다.

저의 상함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하나님이 치유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온 맘 다해 주님을 경외하고, 기쁨으로 경배하고 싶습니다.

 

저의 형식주의를 떨쳐버리고, 저의 솔직한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예배하기 원합니다.

슬픈 마음이든, 병든 몸이든, 어떤 상황이든 전심으로 예수님을 부르면 됩니다.

가진 것 없을 지라도, 예수님만 부르면 됩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 그 이름을 믿으면, 오늘도 주님이 저의 마음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의 구원을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lLsB1amB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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