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23 막 1~3장, “1장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 > 묵상편지

본문 바로가기

묵상편지

10/11/23 막 1~3장, “1장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 Publish on October 11,2023 | 관리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4회 작성일 23-10-11 08:03

본문

BCPC 식구 여러분,  

오늘부터 마가복음을 읽게 됩니다.


마태복음은 열두 제자 중 한 분인 세리 마태(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신약의 처음에 나와서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태복음의 주요 독자는 유대인이었는데요.

구약의 증거를 통해 “메시아(왕)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족보를 통해 다윗의 자손임을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구약의 메시아 예언이 성취되었 다는 구절들을 제시합니다.


그에 비교해, 마가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종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행동에 집중하니, 속도도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래서 분량이 복음서 중에 가장 짧습니다(16장).

시기적으로도, 복음서 중에서는 가장 먼저 쓰였다고 추측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마가복음을 읽을 때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저자가 “마가 요한”이란 것입니다.

마가는 예루살렘에서 다락방을 소유한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행 12:12, 15:37).

그는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홑이불을 두르고 도망갔던 청년입니다(막 14:51).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 갈 때 동행했다가 중도에 탈락했습니다(행 13:13).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이거나, 나이 차이 크게 나는 사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가의 어머니와 삼촌(사촌)은 신앙이 훌륭했지만, 마가는 아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어머니는 권사님이고 삼촌은 선교사님인데, 자기는 나이롱 신자였습 니다. ^^;;)

결국, 2차 선교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지게 됩니다(행 15장).

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끝까지 마가를 포기치 않았고,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로 바나바의 행적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평생을 구브로에서 마가와 함께 사역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바나바가 마가를 영적으로 제대로 세워줍니다.

마치 예전에 바울을 세워서 교회 지도자로 만들고, 선교사를 만들었듯이…….


한참 뒤에 마가가 성경에 다시 등장합니다.

완전 다른 모습입니다.

■ 바울은 마가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동역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골 4:10, 몬 1:24, 딤후 4:11).

■ 베드로는 마가를 영적 아들로 삼았습니다(벧전 5:13).

■ 전승에 의하면, 마가가 베드로의 설교와 간증을 모아서 마가복음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가복음은 자신이 경험했던 예수님의 행적과 베드로에게 들은 행적을 합쳐서 기록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읽다 보면, 이방인 독자들을 배려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마가복음은 상당히 선교적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말년에 로마에서 사역하다가 순교했기 때문에,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을 먼저 신경 쓴 것은 당연합니다.

■ 이방인들을 위해 유대인 관습을 설명합니다(7장). 

■ 이방인들에게 생소한 아람어를 해석해 줍니다(3:17, 5:41, 7:11, 7:34, 15:22). 

■ 그리고, 박해와 순교도 언급합니다(9:34-38, 13:9-13).

당시 상황에서 박해와 순교는 로마교회의 당면 이슈였으니까요. 

마가에 대한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서 마가복음을 읽으면, 마가복음이 훨씬 친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 묵상할 본문은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 아들”이라고 직접 말씀하신 장면이 2번 나옵니다.

1)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 받고 올라오실 때입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고 하셨습니다.

2) 예수님이 공생애를 마무리하는 즈음에 변화산에서 올라가셨을 때도 소리를 들으셨습 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하셨습 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자신이 어떤 아들인지 분명히 아셨습니다.

“(막 1: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I.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이 요단강에 오셔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에,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강림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천사가 마리에게 나타나서 수태고지를 주잖아요?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천사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30살이 되어서 공사역을 시작하는 지금, 하나님은 다시 그 관계를 확인시켜 주셨습 니다. 

성령님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요 주인이라고 영접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저도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하나님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하신 그 말씀이 바로 저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인환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래서 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에 근거해서,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생이란 것을 믿습니다.


예전에 이것이 제 가슴에 와 닿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든 모르든, 깨닫든 못 깨닫든, 가슴에 와 닿든 안 와닿든,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확실히 고백합니다.

●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났습니다.

● 나는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나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살 것입니다. 


물론, 제가 믿지 않아도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내게 적용되고, 내가 것을 실감하는 것은 내가 믿는 그 순간부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때, 그 사랑이 내 맘에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 사랑이 실감 나게 됩니다.

■ 중2 때 여름 수련회에 갔었습니다. 예수님이 날 사랑하시는 것을 믿는다고 처음으로 전심으로 고백했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너무나 크게 느꼈습니다.

■ 고3 때 대입시험을 마치고, 철야 예배에서 기도할 때였습니다. 하나님 날 사랑하신다는 음성을 들었을 때, 그 사랑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 대학생 때 광야같이 메마른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제가 살 수 있었던 생명의 젖줄이 바로 수련회에서 은혜 받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여름 덕유산 캠프장에서 했던 집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라는 찬양을 처음 배웠습니다. 부를 때마다 눈물로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내가 어찌하기 전에 이미 불가항력적인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그 사랑을 적극적으로 믿는다고 고백하고, 더 큰 사랑을 간절히 사모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고, 생생하게 느낄수 있습니다.

오늘 그 사랑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감사하고, 감격하는 마음을 다시 회복하기 원합니다.

 

II.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신분이 무엇인지 알 때에, 자신의 사명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 구절이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증언이라면,

●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구절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증언입니다.


주님은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이 공생애의 목적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생애는 죽기 위한 생애입니다. 

주님이 성육신해서 이 땅에 오신 것도, 공생애 3년 반을 보내는 것도, 궁극적인 목적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것을 모두 아시면서도, 지금 그 생애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이런 모습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주님이 하실 일들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임도 확증해 주셨습니다. 


저는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저도 하나님이 저를 향해 품고 계신 뜻과 목적과 의도를 향해 달려가기 원합니다.

저의 사명을 향해 달려가기 원합니다.

주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소망하는 인생이 될 때, 주님의 기쁨이 될 줄로 믿습니다.

찬양할 때,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라고 노래하곤 합니다.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가사처럼, 저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 

오늘도 부르신 소명에 충성하게 하소서.  

그리고 내년에도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껏 달려가게 하소서.

기쁘고 즐겁게 충성하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HJXQbrbRhT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