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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0/13/23 막 8-10장, “8장 자기를 부인하고” Publish on October 13,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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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8회 작성일 23-10-1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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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막 8장을 묵상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할 때, 주님은 그 신앙고백을 아주 기뻐하셨고,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뒤에 바로 베드로를 꾸짖으십니다. 

신앙고백한 뒤에,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미리 말씀해주셨는데요. 

베드로가 이것을 반대하고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꾸짖으신 뒤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오늘 저는 이 34절에 집중하여 묵상하려고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류한 것이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이고,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비단 베드로만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날 저도 “자기 부인이 어렵고, “나는 죽었다”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순간 옛사람이 죽었다고 선포하기도 하고, 나를 부인하기도 하지만, 또 어느 순간엔가 옛사람이 나를 지배하기도 합니다.

마치 Never Ending Story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자기를 부인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I. 이게 원래 긴 여정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면, 바로 천국가는 게 아니잖아요. 

이 땅에서 오랜 시간동안 살아가는데요.

그 기간 동안 우리가 점점 거룩해지는 과정(성화)을 겪게 됩니다.

과정이란 말은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간다는 말이잖아요.

가끔은 넘어지기도 하고, 퇴보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더욱 앞으로 나아가고, 더욱 거룩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변화된 삶, 성숙해진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확신의 삶이란 1:1 성경공부가 있는데, 이 공부에서 이것을 깊이 있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우리 교회에서도 이 공부를 해 보고 싶습니다.)


II.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과거의 자기 자신이, 옛 자아가 완전히 싫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옛 성질, 옛 기질이 밉고, 싫습니다. 

하지만, 죽도록 싫진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미운정이 들었습니다. 

싫으면서도 좋고 익숙하고, 평안해 졌습니다. 

그래서 버리질 못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십자가 지는 게 무섭고 두렵습니다. 

고생길 가는 게 싫고 멈칫합니다.

그래서 옛 자아를 버리지 못합니다. 

아니, 버리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없습니다.

이게 우리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같은 건 아니더라고요.

그냥 일반 세상에서도 과거를 미워하는 분도 있고, 현재를 벗어버리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1) 과거에 대해 아주 나쁜 기억이나 트라우마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과거를 거억하는 게 몸서리쳐집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그 과거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들은 가족과 단절하고 사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릴 때 가족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그 과거와 엮이고 싶지 않아서, 아예 관계를 단절해 버린 것입니다.  


2) 지금 고통스럽게 투병하시는 분이나, 고생스런 상황에 계신 분들도 지금 상황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런 분들은 자기 과거나 현재가 너무 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외면하고 싶고, 잊어버리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것과 단절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에도 이것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려면, 우선 자기의 과거가 밉고, 나의 현재가 싫어야 합니다. 단절의 욕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나의 과거가 미울 수 있을까요?

내가 과거에 비참한 상황 속에 있었고, 죄 구덩이에서 뒹굴고 있었고, 더럽고 추잡스러 웠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가슴으로 뼈저리게 와 닿아야 합니다.

“내가 진짜 죄인이구나, 내가 너무나 추접스럽구나” 하는 것을 진심으로 느껴지고, 끔찍 하게 싫어야, 그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야 진정 구원자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이것을 다시 절박하게 느끼고,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의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이 사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III.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과정은 8복의 여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8복을 이해하면, 이 과정도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 8복의 시작이 심령이 가난한 것이잖아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가 죄임임을 깨닫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간절하고 절박하게 느끼는 상태입니다. 

메시지 성경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벼랑에서 밧줄 끝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 줄을 놓으면 떨어져 죽습니다. 줄 끝에 죽기 살기로 매달려 있으면서  누군가가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상태, 그런 절박하고 간절한 상태가 심령이 가난한 것이라고 설명했습 니다. 

 

2) 그래서, 나의 죄악된 모습이, 옛 모습이, 나의 옛자아가, 나의 옛사람이 너무 싫고, 미워집니다. 그것에서 분리되고 싶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봐도 잘 안 됩니다. 계속 실패합니다.

벗어나질 못합니다. 

몸부림쳐도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상태가 너무 싫습니다. 벗어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싫어서 울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온몸으로 발버둥 치면서 우는 것이 애통하는 것입니다.


3) 그렇게 울며, 애통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우리가 온유해 집니다.

온유는 그저 성격이 유순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온유는 짐승이 길들여졌다는 뜻입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소를 길들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코뚜레를 꿰기 전에 어린 송아지는 온 천지를 제 멋대로 쫓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코뚜레를 꿰고 처음에는 답답해 죽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이 들면 주인이 농사에 사용하는 일소가 되더라고요.  

 

4) 하나님께 길들여진 사람은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 니다.

그 의를 너무 원하기 때문에,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해 하듯이, 하나님의 의에 주리 고 목말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천국을 주시고, 위로도 주시고, 땅도 기업으로 주시고, 배부름의 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자기 부인의 과정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구원을 체험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막 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저도 오늘 저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길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 지게해 주시고, 주님과 함께 죽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에도 동참하게 되길 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Ji0wNooA2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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