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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0/14/23 막 11~13장, “12장 다윗의 자손, 다윗의 주” Publish on October 15,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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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8회 작성일 23-10-1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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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막 12장을 묵상하려 합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논쟁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11장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이후로, 예수님은 여러 차례 논쟁을 위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 대제사장들은 권위에 대해 논쟁을 걸어왔고요(막 11:27-33).

● 헤롯당은 세금에 대해서(막 12:13-17), 

● 사두개인은 부활에 대해서(막 12:18-27), 

● 서기관은 계명에 대해 질문했습니다(막 12:28-34). 


이 질문들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논쟁하려고 일부러 질문한 것들이었습니다. 

12:13에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라고 했습니다.

논쟁하면서 뭔가 책을 잡고, 덫에 걸어 넣으려고 던진 질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계략에 빠지지 않으셨고, 논쟁을 다 물리치셨습니다.

34절에서는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제 예수님이 반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12: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쌔, 대답하여 가라사대….”

예수님의 질문 내용이 무엇입니까?

“(12: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유대인들은 다윗 왕을 최고로 칩니다.

그래서 메시아도 "다윗의 후손"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정작 다윗은 메시아에게 "주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후손에게 주님이라 하는 게 모순이잖아요.


지금 우리가 들으면, 별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로선 아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말문이 꽉 막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여러 번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막 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고 들었는데,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다윗왕의 후손이란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널리 퍼져 있는 상식이었습니다.

이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1) 구약에서 이사야 11장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난다.”고 했고, 

2) 예레미야 23장에서도 “한 가지가 다윗에게서 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아니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요?


맞는 말이란 것에 함정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이지만, 다 맞는 말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 아니란 말이 아닙니다. 

맞긴 맞는데요. 

문제는, 너무 한쪽에 집착하느라고 다른 쪽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메시아를 다윗의 후손이란 측면으로만 생각했던 것입 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단지 다윗 2세에 불과한 것처럼 제한해 버렸습니다.

마치 코끼리 코를 만지면서 이게 코끼리 전체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거기에 딴지를 거신 것입니다. 

허를 찌르신 것입니다.

코끼리는 몸통도 있고, 다리도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만 되느냐? 시편 110:1을 보아라.” 하신 말씀입니다.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와”는 하나님이고, “내”는 다윗이고, “주”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긴 하지만, 다윗의 후손만 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메시아는 누구일까요?


시편 2편을 보십시오.  

“(2:7) 내가 영(칙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여기에서 “너”는 1차적으로 다윗 왕이지만, 다윗의 후손인 왕들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시편은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합니다.

물론, 메시아가 혈통적으론 "다윗의 후손"이지만, 

영적으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기 후손인 메시아에게 "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명이 길었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에겐 이렇게 긴 설명이 필요가 없습니다.

랍비나 서기관들은 구약을 달달 외우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시편 2편이나 110편을 몰랐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왜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을 못 했을까요?

"육적으론 다윗의 혈통이지만, 영적으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왜 대답을 못 했을 까요? 


우습게도, 그동안 다윗의 후손이란 frame을 너무나 강조하다 보니까, 거기에 꽉 매여 버린 것입니다.

하나만 생각하다 보니까, 다른 것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묵상하는 포인트입니다.

제가 이러고 있진 않은지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혹시 어떤 일에 너무나 몰두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어떤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내가 옳다고, 이것은 확실하다고 너무 확신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혹시 내가 못 보고 있는 건 없는지, 한걸음 물러서서 주위를 돌아봐야겠습니다.

나무만 보고, 산은 못 보는 건 아닌지…….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내가 모르고 있는 게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눈과 귀를 열어야겠 습니다. 

저의 일상생활에서, 가정생활에서 이런 부분은 없는지 다시 돌아보기 원합니다.

특히 아이들과 대화할 때 조심해야겠습니다.

제가 어른이라고 해서, 부모라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니까요.


서기관들처럼, 나의 틀에 갇혀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향해 눈과 귀를 열기를 원합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도 조금 더 융통성 있게 생각하고, 한 번 더 넓게 바라보려고 애써야 겠습 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고, 반대로도 생각해 보고, 암튼 시각을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겠 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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