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23 행 19~20장, “19장 우상을 불태우라”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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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1/8/23 행 19~20장, “19장 우상을 불태우라” Publish on November 08,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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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2회 작성일 23-11-08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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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행 19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8장부터 3차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3차 선교는 5-6년에 걸친 긴 여행이었는데, 가장 중점적으로 사역했던 곳이 에베소 였습니다.

누가는 19장 전체에 걸쳐 에베소 선교를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바울이 선교할 때, 한 도시에서 잠깐만 사역한 곳도 많았는데, 에베소에서는 3년을 머물렀습니다.

특히, 두란노 서원에서 2년을 사역했습니다.

에베소에서 얼마나 권능 있게 사역했는지, 바울의 손수건만 얹어도 병이 나았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우상 섬기는 마술하던 마술사들이 그 마술책을 다 불태워버린 사건입니다. 


“(행 19: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당시 에베소는 미의 여신, 알테미스를 섬겼는데요. 

우상 숭배를 통해 은장색(은세공업자)과 마술사들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은장색들은 우상과 신전 모형을 만들어 팔았고, 마술사들은 우상 숭배를 통해 마술했습 니다.

그런데 이 마술사들이 예수를 믿고, 은 5만(데나리온)이나 되는 많은 두루마리를 불태웠다 합니다. 

이것을 오늘 저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I. 우상을 불태우라

에베소는 알테미스 신전과 그 우상들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그중에 마술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를 배경으로 마술을 하면서 돈벌이를 했습니다.

우상 숭배 예식 중에 마술로 신기한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춤과 음악과 무언극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당시에 이곳의 주술책과 부적을 에베소 문서라 부를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로마 황실에서 에베소의 점성술사를 황실 점성술사로 임명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하면서, 마술사들도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마술사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자기들이 했던 일이 잘못되었단 것을 깨달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마술책들을 가지고 옵니다.

그 두루마리들은 자기들 돈벌이의 밑천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우상으로 인도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그곳에 내던졌습니다.

아낌없이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 책값을 계산하니까, 은 5만 드라크마였다고 합니다. 

은 1 드라크마는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요즘 노동자가 하루에 100불 번다 치면, 500만 불 어치를 불태웠단 말입니다. 


아마존에서 파는 책이 대부분 15불 이하이고, 평균 10불 정도라고 합니다.

요즘 5만 드라크마로 책을 사면, 10불짜리 책을 50만 권 살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 믿고 나서 작은 대학 도서관 하나를 불태워 버렸다는 말입니다.


저에게 이 책을 처리할 역할이 주어졌다면, 저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을 팔아서 구제할 수도 있고, 장학 헌금을 낼 수도 있고, 바울의 선교비에 보탤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선한 일에 쓸데가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왜 마술사들은 그 책으로 헌금도, 구제도, 선교비로 쓰지 않았을까요?

그 책을 중고로 팔면 누군가가 또 마술하고, 우상 숭배를 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우상숭배의 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그냥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 많은 돈을 그냥 태워버렸습니다. 

거룩한 낭비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 마음에 상당히 도전됩니다. 

저도 우상과 마술책들을 불태우기 원합니다. 

  * 저에겐 어떤 우상이 있을까요? 

  * 제가 태워야 할 우상은 무엇일까요?

 오늘 그것을 아낌없이 불태우고, 거룩하게 낭비하기 원합니다.


II. 우상 숭배: 가장 사랑하느냐의 이슈

성도 중에 우상을 허용할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이것이 자신의 우상이라고 인정하고, 그것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우상 숭배에 대해 묵상하다 보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 

희진이가 서너 살 때, 제 무릎에 앉혀 놓고는 “아빠 좋아 엄마 좋아?” 묻곤 했습니다.

그런데 희진이는 어린데도, 아빠냐 엄마냐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에 애가 달아서, 저는 더 열심히 물었습니다.

하루는 희진이가 저에게 대답했습니다. 

  “왜 자꾸 그런 걸 물어. 유치하게! 흥.” 하고 가버렸습니다.

그날 저는 희진이에게 유치한 아빠가 되었습니다.

  “둘 다 사랑하는데, 왜 하나를 고르라 하냐?”는 것이 희진이의 불만이었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희진이에게 “누가 좋냐?”고 묻지만, 아내는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희진이는 말로는 절대로 “엄마가 더 좋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을 보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놀다가도 늘 엄마를 확인합니다.

제 품에 누워 자다가도, 잠결에 엄마를 찾아갑니다.

누가 봐도 희진이는 엄마를 더 사랑합니다.

그러니 아내로선 굳이 희진이에게 “누가 더 좋냐?”고 물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우상 이야기에 적용해 봅니다. 

우상 숭배라 하면, 금신상이니, 은신상이니 하는 것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우상은 그 정도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 자리를 차지한 것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제치고 첫 번째 우선순위 되는 것

Nothing이 Something으로 여겨지는 것을 우상이라 합니다.


저의 모습을 보면, 우상 숭배하지 않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은 하나님이 관심가지신 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관심은 딴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닌데,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중요하지만, 내 인생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걸 아시기에, 저에게 매번 묻습니다.

내가 더 좋아, 네 자식이 더 좋아?

너의 관심이 내게 있니, 너의 일에 있니?

내가 더 중요해, 네 의견과 생각이 더 중요해?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걸 물어보실 때, 저는 예전의 희진이처럼 대답합니다.

“아, 하나님. 뭐 자꾸 그런 걸 물어요. 유치하게!”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아세요?

단순히 하나만 선택하기 곤란한 상황이 얼마나 많은데요.

누가 하나님 선택하기 싫어서 안 하나요?

상황과 형편이 그런 걸 어떡해요!”

 

그러나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제 삶과 행동을 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무슨 생각하는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어디에 돈과 시간을 쓰고 있는지,

어디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check 해 보면, 우선순위가 금방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음…….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다른 것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오늘 저의 우상들을 내버리기 원합니다.

오늘 주님께 다시 제 마음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주님만 사랑하기 원합니다.

아니,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결단하고, 거룩한 낭비를 실천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a-JWdGmZ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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