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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1/9/23 행 21~23장, “20장 유두고” Publish on November 10,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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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6회 작성일 23-11-1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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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행 20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드로아(트로이)입니다. 

“트로이의 목마”할 때 그 트로이입니다.

드로아는 터키 서북부 해변에 있는 도시입니다.

바울 일행이 2차 선교여행 때 아시아로 가려 했는데요. 

꿈에 마게도니아 환상을 보고 그리스로 방향을 돌렸던 곳입니다(16장).

그리고 이제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드로아에 들렀습니다(20장). 

오랜만에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더구나 바울이 이곳을 다시 방문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로마를 선교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9장).

마지막 한 말씀이라도 더 전하고 싶은 마음에,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은 마음에, 밤늦게 까지 설교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두고란 청년이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것입니다.

오늘은 이 유두고가 죽었다가 살아나 사건을 묵상하겠습니다.


I. 떨어진 유두고

“(행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유두고는 왜 창문에 앉아서 예배드렸고, 왜 예배시간에 졸았을까요?

그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9절은 청년의 이름이 유두고(유티쿠스, Eutychus)라고 밝힙니다. 

● 우리는 유티쿠스란 말을 들어도 별 느낌이 없는데요. 

● 당시 사람들에겐 느낌이 확 오는 이름이었을 겁니다.

유티쿠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돌쇠나 마당쇠입니다.

당시에 종이나 해방 노예들 사이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두고는 어느 부잣집의 종이거나 고용된 일꾼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진 않지만, 이날도 변함없이 온종일 주인집에서 일하다가 늦게 도착했을 것입니다. 

자리가 다 차서 들어갈 데가 없으니까, 창문에 걸터앉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의 집 종으로 일하니까, 얼마나 바쁘고 피곤하겠습니까? 

결국,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졸다가 떨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예배시간에 졸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집에 가서 자는 것보다 교회 와서 조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피곤한 몸에도 불구하고, 말씀 들으러 나온 것은 잘한 일입니다.

피곤하다고 집에서 쉬는 게 아니라, 그래도 말씀 들으러 나오는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소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피곤하지만, 참여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저도 상황 때문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은혜의 자리를 포기치 않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더욱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II. 기도하는 바울

(행 20: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그런데 불행히도, 피곤한 중이라 열심을 내었던 청년 유두고가 떨어져 죽는 사고가 생겼습 니다.

이때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몸을 끌어안았습니다.

끌어안고 기도했습니다.

● 마치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3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했습니다.

●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기도했던 것처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살아났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고 도르가를 살렸듯이, 그렇게 살아났습니다.


여기에서 기도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에 있어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고, 응답하시는 것은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 본문에서, 유두고를 살리실지, 그대로 천국으로 데려 가실지는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 바울이 한 일은 그저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 영혼을 다시 돌려주셨습니다.

물론, 다시 돌려주신 것도 은혜요, 데려가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돌려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기도는 믿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저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 체험하기를 사모합니다.

그 역사를 실제로 체험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III. 위로받은 성도들

“(행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유두고가 3층에서 떨어졌을 때,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의사였던 누가가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한순간에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했습니다.

● 떠들지 마라.

● 부정적인 말 하지 마라.

● 절망적인 말을 하지 마라.

● 원망하고 저주하는 말 하지 마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그가 다시 살아난다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위로가 임했습니다.

바울이 그 청년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그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성도들이 크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가끔 우리는 절망적인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 

내 힘을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낙망하게 됩니다.

놀라게 되고, 부정적인 말로 떠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끝장나는 자리, 죽음의 자리, 바닥까지 떨어져 전혀 소망이 없는 자리에서도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위로가 임했습니다. 

저에게도 소망은 하나님의 위로밖에 없습니다.

벼랑의 바닥에서라도 하나님의 위로를 만나면, 다시 회복될 줄 믿습니다.

 

주님, 

힘든 현실 속에서도 예배를 사모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어려운 일 당하더라도, 놀라 허둥대거나 떠들지 말게 해 주십시오. 

오직 주님의 위로를 소망하며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특히, 어려운 상황을 겪고 계신 우리 성도들에게도 주님의 위로를 허락해 주십시오.

오늘도 그 위로를 체험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https://www.youtube.com/watch?v=zRk7b50kJ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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