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23 고전 7-10장, “10장 자유와 덕”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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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1/20/23 고전 7-10장, “10장 자유와 덕” Publish on November 2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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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1회 작성일 23-11-2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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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고전 10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우선, 고린도전서의 배경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특히 서신서를 읽을 때,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읽으면, 내용과 문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특별한 애정을 쏟았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때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왔습니다(행 16~18장).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 함께 tent making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거의 일 년 반이나 고린도에서 사역했고, 교회가 잘 성장했습니다.


그 후에 3차 선교 여행을 했는데, 이때는 주로 에베소에서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클로에의 집” 사람들로부터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분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고전 1:10-17).

또한, 고린도 교회의 대표단(스데바나, 보드나도, 아가이고, 고전 16:17)도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바울의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바울이 당장 고린도로 달려가고 싶었겠지만, 에베소 사역의 상황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 편지를 써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편지 중 하나가 고린도전서 입니다.

이 편지에는 분파(1~4장)와 음행과 법정 소송(5~6장)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궁금해 하던 결혼(7장), 우상 제물(8-10장), 예배 시 여성의 복장과 성찬(11장), 성령의 은사(12~14장), 부활(15장), 헌금(16장) 등에 관한 내용도 적었습니다.

오늘은 10장에서 바울이 교회의 문제들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중심으로 묵상하겠 습니다.


“(고전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고전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객관적으로 볼 때도, 고린도 교회에는 문제가 많고, 문제도 참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편지 쓸 때, “이건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되었다. 누가 주동했느냐?”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 상황이면, 상당히 짜증이 날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문제들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또는 고린도 교인들을 “골칫덩어리들”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 바울은 이곳을 “하나님의 교회”라 부릅니다. 

● 그곳 사람들을 “거룩한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또한, 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구하는 축복을 했습니다(1:3).


문제와 문제 속에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참으로 저와 다르단 생각이 듭니 다.

예를 들어서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이슈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 같으면, 그 이슈가 신학적으로 옳다/그르다로 말하고, o/x로 구분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외형상의 문제에 매이지 않습니다.

문제 속에 들어있는 근본적인 이슈에 집중합니다.

1) 이 문제의 핵심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밖으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힙니다.

바울은 지금 고기를 먹는 문제도 단순한 고기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제사상에 올라갔느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니라고 합니다.

정답은 분명합니다.

먹어도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님 안에서 자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바울이 그다음 단계로 언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유가 주어졌는데, 우리는 이 자유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23절을 쉽게 풀이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고전 10:23, 쉬운말) “모든 것이 다 허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 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은 허용된 것입니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지 “허용된 것이니 하면 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허용된 것이라는 전제 위에, 한 가지 더 생각하자고 제안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생각할 때, “가하냐 불가하냐,” 즉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말자고 합니다.

“해서 좋으냐, 나쁘냐”의 관점으로 접근하자고 합니다.

유익과 덕의 관점으로 접근해 보자고 합니다.

 

바울은 이슈를 만났을 때, 자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가치 있고, 고상한 것은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0:23).

그래서 “(고전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롬 15장이 생각납니다.

“(롬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롬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바울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전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바울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쉬운말 성경은 이 구절을 이해하기 쉽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고전 10:33, 쉬운말) 나를 보십시오. 나는 어떻게든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씁 니다. 또 나는 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힘써 추구합 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어떻게든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나만 생각하면, 충분히 나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교회 전체의 건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 영혼을 구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태도입니다.

자기의 권리와 편리를 희생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4) 33절과 비슷한 얘기를 9장에서도 이미 했었습니다. 

“(고전 9: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고전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고전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바울은 자기에게 충분히 권리(권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유를 행사할 권리(권한)를 쓰지 않는 것은 자기가 그 권리(권한)를 행사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복음의 확산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맞춰주고 있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5) 저도 순간마다 저의 유익을 구합니다.

제가 편한 것, 제가 기쁜 것, 제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자기가 손수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너희도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권리를 다 써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다 써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어렵습니다.

저도 저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저의 권리 행사보다 많은 사람의 구원을 중요시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습니다.


6) 묵상은 다시 자유라는 주제로 돌아갑니다.

자유가 뭘까요?

예수님은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를 돌아보니, 자유를 추구하지만, 정작 자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고전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자유가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자유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행사하지 않고, 저 자신의 개인적 이익과 즐거움만을 위하여 사용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개인적 이익과 즐거움만을 위하여 사용하려는 그 마음이 저에게 또다시 올무가 되어, 저를 얽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자기의 자유에조차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이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자기가 소유한 ‘자유를 누릴 권리’에 조차 얽매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가 당연한 시대에 살다가 바울의 생각을 접하니, 머리를 한 대 띵 맞는 느낌입 니다. 

저도 저의 욕심과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을 버리려고 애써야겠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유익과 덕을 세우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7)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덕을 추구할 수 있었을까요?

“(고전 8:1) ...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는 구절에서 힌트를 얻습 니다.

사랑하면 덕을 세웁니다.

바울도 고린도 교회 공동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공동체의 덕을 추구했습니다.

저도 더욱 사랑해야겠습니다.

저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서, 공동체를 사랑해야겠습니다.

형제, 자매들을, 목장 식구들을, 팀원들을 더욱 사랑하려 애써야겠습니다.


주여,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저도 형제와 지체들을 사랑함으로써, 저의 유익이 아니라 그들의 유익을 구하게 하소서.

그들을 덕스럽게 세워주는 일을 추구하며 살게 해주소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을 전파하는 통로가,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https://youtu.be/wyD6HFUm1vI?si=HXCIfgReNaQxmu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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