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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1/23/23 고후 1~3장, “1장 상처입은 치유자” Publish on November 25,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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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5회 작성일 23-11-2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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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부터 고린도후서를 시작합니다.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3차 선교 중에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보냈던 편지 입니다.

이때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었는데,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의 형편이 어려워서, 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모두 다섯 번 정도 편지를 써 보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습 니다.

(앞에서 읽은 고린도전서는 두 번째 편지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디도를 통해 세 번째 편지를 보낸 후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네 번째(1~9장)와 다섯 번째(10~13 장) 편지입니다.


오늘은 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한 뒤에 보낸 편지인 때문인지, 고린도후서에는 “위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바울은 어려움을 겪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위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마음의 아픔과 어려움을 보듬어 주고, 치료해 주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healing입니다.


요즘 우리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로와 치유가 참으로 중요한 단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 어려움 없이, 아무 고통과 상처 없이 산다면 좋겠지요.

그러나 세상 살면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상처를 받고, 아파하며 삽니다. 

어려움이나 아픔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요. 

어려움을 겪고 상처를 받았는데, 그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위로받고, 그 상처를 극복하면서, 성공한 분들이 많습니다.


I. 예수님은 상처 입은 치료자였습니다.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 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3절에는 하나님이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4절은 하나님이 “모든 환란 중에 우리를 위로하신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우리가 고난도 많이 받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도 많이 받는다”라고 했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쓴 책 중에 [상처받은 치유자, The wounded healer]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나우웬은 이 책에서 예수님이 얼마나 많이 상처받았는지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상처들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가슴에 끌어안고 이해하고 치유하시는 분이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얼마나 아픔을 많이 겪으셨는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는 바로 그런 상처받은 예수님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토록 상처 많으신 주님이 그 상처를 통해 우리를 치유하신다는 것입니다.

◆ 갈기갈기 찢기신 가슴으로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 눈물 마를 날 없었던 그 눈물을 가지고, 우리 슬픔의 눈을 치료하십니다.

◆ 못 박히신 두 손과 발을 가지고, 어쩔 수 없는 죄악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우리 인간 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고통과 질고를 아는 분이셨고, 또한 다른 이들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셨 습니다. 

상처 입은 치료자였습니다. 

자신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인환아, 내가 너의 상처와 아픔을 아노라. 나도 너와 같이 고통당하였노라. 그리고 이제 내 상처로 너를 치료하노라.” 

오늘 상처 입은 치료자이신 예수님이 저를 치료해 주실 줄 믿습니다. 


2. 위로로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 고린도후서에 “환란”이란 단어가 9번이나 나옵니다. 

고린도 교회는 얼마 전에 환란을 많이 겪었던 교회였습니다.

또한, 바울도 환란을 참 많이 당했습니다. 

◆ 그러면, “위로”는 몇 번 나올까요? 

19번이 나옵니다. 

바울이 환난을 많이 당했어도, 하나님의 위로는 더 많았습니다.

아무리 환란이 강해도 하나님의 위로가 더 크면 환란을 이기는 줄 믿습니다. 

 

예수 믿는 신앙이란 “그냥 이 딱 깨물고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치유와 위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께 나아가서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다 내어놓아야겠습니다.

◆ “주님, 누구의 말 듣고 아프고요, 누구와 관계 때문에 힘들어요.”

◆ “돈 없고, 능력 없어서 힘들어요.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 “누가 절 배신했어요.”

어떤 상처든 괜찮습니다. 

모두 다 내어놓아야겠습니다.


10절에서는 위로의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의지할 때, 어떻게 되는지 설명합니다. 

“(고후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 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과거에도 건지셨고, 미래에도 건져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구해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이란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위로와 치유와 건져주심을 기대하며 기도해야겠습니다. 

기도하면, 주님이 뭐라 하실까요?

◆ "언어폭력으로 힘들었니? 그래 맞다. 언어폭력이 참 힘들지. 나도 겪어 봤는데, 마음이 참 쓰리더라."

◆ "세상 살기 힘들었니? 그래 맞아. 나도 참 가난했었어. 태어날 때 마구간에서 태어났지, 먹을 게 없어서 밀 이삭 훑어 먹었지. 밖에서 노숙하기도 했었어."

◆ "친구에게 배신당했니? 나도 친구에게 뒤통수 맞은 적이 있잖아. 진짜 가슴이 무너지 더라."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내가 뭘 잘못했지?” 생각합니다.

불행을 당하면, “내가 지은 죗값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욥의 친구들처럼 생각합니다. 

그 친구들의 충고가 무엇이었습니까? 

“네가 이렇게 고난 겪는 것은 분명히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빨리 회개 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완전 헛다리짚은 말들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유치한 분이 아닙니다.

말할 수 없이 큰 사랑으로 저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오늘 저도 저보다 더 저를 사랑하시고, 저를 위해 아파해주시는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치료를 체험하기 원합니다. 


III. 우리도 상처 입은 치료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후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우리는 모두 감정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도 세상 살면서 상처 입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려움 없고, 상처 없는 것이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아랍의 속담에 “맑은 날만 계속되면, 그곳은 사막이 된다.”는 말이 있답니다.

흐린 날도 없고, 비 오는 날도 없고, 매일 화창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맑은 날만 계속되면, 그 곳은 사막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행복만 추구하다 보면, 큰 불행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작은 불행들을 경험하는 것이 큰 행복을 맞이하는 과정일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많은 사람이 상처에 부정적으로 반응합니다.

◆ 가난했다가 자수성가해서 성공하면, 더 지독한 자린고비가 됩니다.

◆ 가정폭력을 경험하면, 자라서 또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는 남편이 됩니다.

◆ 배신을 경험하면, 복수의 화신이 됩니다.

◆ 교회에서 상처받으면, 교회를 떠나 버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선 절대로 상처가 치료되지 않습니다. 


상처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오히려 유익이 많습니다.

저는 주님에게 저의 상처를 치료받고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 저의 사명을 발견하곤 했습 니다. 

“아픈 것이 사명입니다.”

돌이켜보면, 상처가 제 사명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상처를 통해 비전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제가 상처를 입고, 회복되는 경험을 한 것은, 가서 다른 사람들도 위로하고, 치료해 주라는 부르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고난을 잘 이기는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인생의 상처가 상처(Scar)로 남지 않았습니다.

상처가 별(Star)이 되어 빛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살다 보면, 이런저런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상처로 남겨두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그 상처를 치료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부르심을 찾아가야 겠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위로자로서의 사명도 충성되이 감당하며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https://youtu.be/FDcxc6NInWQ?si=EaoObB0UnwJ1eL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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