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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1/24/23 고후 4-6장, “6장 은혜” Publish on November 25,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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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9회 작성일 23-1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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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고후 6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의 사도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 13권 중에, 한 곳도 빠짐없이, 매 편지마다 은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서신 전체에서 은혜가 89절에서 언급됩니다.

이번 주에 읽고 있는 고린도후서가 13장인데, 은혜를 16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6장 전반부(1-10절)에서 언급되는 은혜에 집중해서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1-2)

“(고후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 이 받지 말라.”


1)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은사도 많고, 은혜도 많이 받았음에도, 그 은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편에서 뭔가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공로를 쌓거나 선행을 행해서 받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짜로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도 공짜로 주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아들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엄청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알면 알수록 더 깊이 감격하게 됩니다.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라고 노래하게 됩니다. 


2)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은혜를 강조할까요? 바울 자신이 은혜를 깊이 체험했기 때문일 겁니다.

바울은 원래 예수님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날도 다메섹에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잡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이 강권적으로 나타나 주셔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습 니다.


바울은 당시에 은혜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선, 예수님 믿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벌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노력과 공로가 전혀 없는데, 100%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은혜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고, 소중했습니다.

마음속이 그 은혜로 가득 차 있으니, 편지를 쓸 때마다 그 은혜를 자연히 언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II. 은혜의 때

“(고후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1) 바울은 그 은혜에 반응했습니다.

만약,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이었다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겠습니까?만약, 자기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었다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은혜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에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고, 몇 차례나 선교 여행을 다니는 것도 자기 공로나 의를 세우는 일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지금 에베소에 있으면서도 몇 번이나 고린도에 편지를 보내는 것도 자기의 공로나 의를 세우는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늘 그 은혜를 생각했고, 마음속에 품었고, 그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은혜의 시대를 여신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도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알기를 원했습니다.

은혜받기를 사모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외쳤습니다.

  

2) 순서가 중요합니다.

은혜를 받을 때, 은혜를 제대로 깨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은혜의 터치를 경험하면, 이전과 전혀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어떤 힘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 은혜로 인해, 내 속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생각의 중심이 되고, 자기 행동의 중심도 하나님이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 삶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마음을 소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평소에 하지 못하던 결단도 하게 되고, 평소에 하지 못하던 행동도 하게 됩니다.

은혜가 우리 삶을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에 반응하여 살게 됩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우리 행동이 하나님께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을 견딘 것도 은혜에 반응한 행동이었습니다(6:4-5).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행동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한 행동이었습니다(6:6).

고린도후서의 교인들은 얼마 전에 고린도전서의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에 머물길 원치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제대로 반응하여 살기를 원했습니다.

바르게 행동하고 그 행동으로 은혜를 증명하길 원했습니다.

자신이 행동했던 것처럼,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 고난을 극복하며 사명을 감당하며 살고, 깨끗하게 행동하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어느 지점에 있는지 돌아봅니다.

은혜에 대해서도 어떻게 반응하는지 돌아봅니다. 

제 속에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는지….

혹시 그 감격과 열정이 여전히 불타고 있는지….

혹시 무뎌지거나 잊지는 않았는지….

오늘 주님의 은혜에 다시 집중하기 원합니다.

대한 감격과 열정을 다시 불 피우기 원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회복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사명도 더욱 충성되이 감당하기 원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은혜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고, 은혜를 나누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S4tUIUh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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