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23 고후 10~13장, “12장 약할 때 강함 되심”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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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1/26/23 고후 10~13장, “12장 약할 때 강함 되심” Publish on November 26,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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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5회 작성일 23-11-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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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고후 12장을 묵상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에는 “환난 중에 위로받는 것”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약할 때 강하되심”에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극심한 고난 받았고, 그로 인해 약해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 1장에선 아시아(에베소, 터키)지역에서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는 듯 한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에베소에서 3년간 사역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행 19장에 보면, 에베소에서 큰 폭동이 나서 위험한 상황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고전 15:32에서는, 폭력적인 군중들을 경험하면서 “에베소에서 짐승과 싸웠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11장에는 유명한 바울의 고난 리스트가 나옵니다.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더구나, 12장에는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고후 12:7)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 가시가 얼마나 바울을 힘들게 했는지, 그 가시를 사탄의 사자라고 부를 지경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안질이거나, 간질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아무튼, 그런 것들 때문에, 바울은 지금 너무나 약해져 있습니다.


상황도 힘들고, 몸도 좋지 않습니다.

안팎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이상한 얘기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약함을 감추고 강함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 약함을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약한 그때 강해지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1. 바울은 가시가 유익하므로, 약함을 자랑합니다.

사실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모두 가시를 가지고 삽니다. 

인생에서 작은 가시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가시에 찔리면 아프지요.

가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시에 찔림 받음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유익일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시잖아요? 

조개 안에 모래가 들어옵니다. 

모래가 자기 살을 찌르고 상처 주지요. 

그러면, 조개가 그 모래알을 감싸려고 하다가 진주를 만들어 냅니다. 


저도 제 속에 가시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 가시에 찔리면 아픕니다. 

아픔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찔릴 때마다 아픕니다. 

하지만, 그 가시를 잘 다루면, 제 속에서 진주를 만들게 해줄 것입니다. 

아파하지만 말고, 그 가시를 진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2. 바울은 약해서 혼자 설 수 없으므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제가 시골에 살 때, 앞산에 밤나무가 있었습니다.

밤송이에 가시가 많잖아요.

잘못 찔리면 눈물이 쑥 빠지도록 아픕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가을에 밤을 수확할 때,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작업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가죽이 가시를 막아주니까,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원리가 성경에도 적용됩니다.

바울은 지금 너무 약합니다. 

혼자 설 수 없습니다.

이때 어떻게 할까요?

혼자 설 수 없을 때, 예수님께 기대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그 약함 속에서 역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약한 속살 위에 겉살이 되어 주시고, 보호막이 되어 주셨습니다.


저도 약해지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니, 매일 넘어질 것 같은 순간을 만납니다.

그때, 저도 주님께 기대기 원합니다.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이 저를 든든히 붙잡아 주십니다

주의 품에 기대면, 그 따뜻한 품에 안기게 됩니다.

주의 팔을 의지하면, 주님이 저의 손잡고 동행해 주십니다.

저는 약합니다. 

그러나 강하신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의 강한 팔이 저를 세워 주시니까, 제가 굳게 서게 되고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약합니다.

그런데, 전능한 하나님께 의지하니까, 하나님의 전능이 바울을 붙들어주고 바울 속에서 역사하니까,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전능이 역사하는 통로가 되니까, 결국 바울이 모든 것을 하게 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약함이 강함이라고 고백하고,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약함을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를 떠올립니다.

저도 약하거든요.

어떤 것이 저를 약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 약함 때문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넘어질 때, 하나님 쪽으로 넘어져야겠습니다. 

넘어지는 순간에라도 하나님을 붙잡아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저를 잡아주시고, 다시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심하게 약해지면, 제 속이 텅 빈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속을 뭔가로 채우고 싶어집니다.

그 약함을 세상 것으로 채우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바울처럼 오히려 연약을 인정하고, 제 속을 비워야겠습니다. 

그 속으로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해야겠습니다.


예전에 바람 인형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 있을 때, 주유소 같은 곳에 가면, 바람 인형이 서 있는 걸 자주 보았습니다. 

그게 그냥 속이 텅 비었습니다. 

재질도 그냥 아주 얇은 천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평소엔 힘없이 누워있습니다.

제힘으론 1초도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인형이 어떻게 서 있느냐 하면요. 

모터를 켜서 바람을 불어 넣으면 서게 됩니다. 

모터를 켜면, 금방 일어서서 춤을 춥니다.

만약 인형을 강하게 하려고 돌을 집어넣거나, 뻣뻣한 천을 쓴다면, 바람 인형은 오히려 제대로 서있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속이 비면 빌수록 더 잘 섭니다.


그 인형과 바람을 저와 성령으로 적용해 봅니다.

제 속이 비고 성령의 바람이 불면, 그게 우뚝 서는 비결입니다.

억지로 속을 채우면, 오히려 성령의 바람을 방해할 뿐입니다.

저도 제 속을 비우고,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도록 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제 속에 성령의 바람이 불게 되고, 제가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지기를 소원합니다.


https://youtu.be/tAIu_LC9E58?si=5dhKsXhPo1RTq7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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