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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1/23 살전 1-3장, “1장 믿음 소망 사랑” Publish on December 0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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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2회 작성일 23-12-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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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살전 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엑나티아 도로(Via Egnatia) 선상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Via Egnitia는 마게도냐(그리스 북부 지방)를 동서로 관통하여,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했습 니다.) 

데살로니가는 동서양을 잇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고, 당시 인구가 20만 명에 이를 정도 의 대도시였으며, 마게도냐 지방의 행정 수도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 때 개척한 교회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후에, 데살로니가로 옮겨왔습니다(행 17:1-9).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 조금밖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들이 회심하였는데,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극심하게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가까운 베뢰아로 피신했다가, 다시 아덴(아테네, 그리스 남부 지방)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행 17장).


데살로니가를 떠나온 바울은 이제 막 개척된 데살로니가 교회가 염려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다시 방문하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사단의 방해로 번번이 무산되었습 니다(살전 2:18). 

그리고 고린도 사역 때문에, 데살로니가로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파송했는데요(살전 3:2). 

디모데가 돌아와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살전 3:6, 행 18:5).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환난 중에서도 신앙을 잘 지키고 있고, 믿음과 사랑이 풍성 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몇 가지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쓴 것이 데살로니가전서 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바울은 성도의 부활(4:13-15), 성적인 문제(4:3-8), 게으름(4:11-12). 영적 은사에 대한 이해(5:19-20)와 재림 신앙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편지를 시작하면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기억한다”고 했습니다(살전 1:3). 

오늘은 이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1. 믿음의 역사

믿음의 역사​는 믿음에 의해서 산출된 열매(결과)를 말합니다. 

믿음의 역사를 쉽게 말하면, ‘믿음으로 행한 일들’입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는데요(약 2:26).

야고보의 “행함”과 바울의 “역사”가 한국어 번역은 다르지만, 원어는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믿음으로 사는 일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힘든 상황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켰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 들을 도왔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을 구원받은 것도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을 버리는 믿음을 발휘했고(9절), 유대인들의 심한 핍 박에도 불구하고(행 17:5)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살전 3:8).


믿음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구원받고 새롭게 된 마음에서 시작된 자연스러운 삶의 변화입니다.

우선은 내면적인 변화겠지요.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영접하고 믿는 것은 엄청난 변화이니까요.

그 후의 모습에서도 변화는 분명했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분명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변화가 그들에게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과 우리의 믿음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믿음의 역사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저의 믿음의 역사가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동일할 수 없습니다. 

오늘 저는 어떤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어떤 행동과 실천과 적용을 이뤄가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2. 사랑의 수고

그 믿음의 역사는 무엇으로 또 나타납니까? 

사랑의 수고로 나타납니다. 

사랑의 수고는 ‘사랑으로 말미암은 수고’, 또는 ‘사랑에 의해서 촉진된 수고’라는 의미입 니다.

즉, 사랑 때문에 하는 수고입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 입니다.

아가페는 자격 없는 죄인에게 부어주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가 바로 사랑입니다(요일 4:8). 


이 사랑에 대한 반응은 무엇일까요?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런데 요한일서는 저의 생각과 다릅니다.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 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보이는 형제, 자매,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사랑은 말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로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랑은 행동한다고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는 수고로움이 따릅니다.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실천하려면 양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앞세워서는 절대로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만이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부인은 믿음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역사’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행위가 ‘사랑의 수고’입니다.


아내를 보면, 아이들을 참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말에, 행동에 사랑이 묻어 있습니다.

참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고 섬깁니다.

수고하는 모습이 눈에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루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나중에 시집/장가보낼 때, 결혼식장에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다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수고할 수 있겠지요. 

사랑하기 때문에, 후회하기 싫은 것이겠지요.

저도 더욱 열심히 사랑의 수고를 해야겠습니다.

 

3. 소망의 인내

그 사랑의 수고는 어디에서 옵니까? 

‘소망의 인내’에서 옵니다. 

‘소망의 ‘소망으로 말미암은 인내’, 또는 ‘소망 때문에 생겨난 인내’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신앙생활의 초기부터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핍박이 있음에도 믿음을 지키고 사랑으로 섬기기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품었기 때문에, 그렇게 환난 중에 인내하며 살았습니다.

장차 재림하여 면류관을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였기에, 인내하면 이겨낼 수 있었습 니다(살전 2:14-16).


여기서 말하는 소망은 ‘미래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막연한 마음’은 아닙니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냥 막연히 좋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망은 확실한 것입니다. 

확실히 정해졌고, 반드시 올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라고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소망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인내는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그저 버티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오늘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은 믿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한, 오늘에 대한 투자는 사랑의 행동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신앙의 3종 세트입니다.

오늘 저도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이끌려 살고, 사랑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소망 안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기 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83tLQVsU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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