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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4/23 살후 1~3장, “1장 환난의 보상” Publish on December 05,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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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8회 작성일 23-12-0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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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살후 1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는 그리스 북부(마게도냐)에 있는 대도시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이방인들이 주축이 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극심하게 박해했기 때문에, 멀리 그리스 남부 지방까지 피신해야 했습니다(행 17장).

그러나 바울은 이제 막 개척된 이 교회가 염려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초신자인 그들을 위해 박해와 부활, 재림 같은 중요한 신앙 주제들로 편지를 쓴 것이 데살로니가 전/후서입니다.

전서를 쓰고 얼마 뒤에 바로 후서를 썼기 때문에, 두 편지는 마치 시리즈처럼 내용이 연관 되어 있습니다.

살후 1장에서도, 바울은 첫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박해와 환난이라는 주제를 언급합니다.

“(살후 1: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

(살후 1: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살후 1: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세상에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저 만해도, 제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내가 하나님께 뭘 잘못했나?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는 건가?”하며, 나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고난에 대해 저와 시각이 다릅니다. 

성경은 의외로 고난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난이 영광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나시잖아요? 

그때 그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시니까, 눈이 확 열리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때, 뭐라 성경을 풀어주셨냐 하면요.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했습니다(눅 24:26).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입 니다. 


지금 바울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 받고 있다”고 격려합니다. 

“(살후 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예수님도, 제자들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하나같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웠습니다.

물론, 고난이 쉬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맞으면 안 아픈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도 맞으면 아프더라고요. ^^;;

그런데 바울은 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고난 앞에서 담대하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1. 핍박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기 때문입니다.

“(살후 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바울은 핍박과 환난이 공의로운 심판의 표(sign이나 증거)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요. 

신자가 예수 믿기 때문에 핍박당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미움 당하잖아요? 

그럼, 그때 더욱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믿는 사람은 나중에 하나님이 반드시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예수님 믿고, 의롭게 사느라고 고생하고 있는데요. 이 일에 대해 심판해 주세요. 나중에 꼭 갚아 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불의한 핍박은 장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실 확실한 증거와 sign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핍박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 받도록 만드는 통로입니다.

“(살후 1:5)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고난과 환난을 겪을 때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기도하고, 더욱 신앙이 자라나고, 인격이 성숙해지게 됩니다. 

더욱 천국을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게 됩니다.

쇳덩이가 단순한 쇳덩이일 때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장장이 손에 들어가면, 풀무에 들어가서 벌겋게 달궈지고, 망치로 두들겨 맞고, 찬물 속에 풍덩 담기는 과정(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과하면 귀중한 보검으로 거듭납니다.


저도 고난 받을 때 이런 생각하기가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고난 받을 때,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다듬어져 가고 있다고 고백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은혜 받는 기회로 삼아야겠습니다. 

  

3. 핍박은 우리에게 안식을 가져다줍니다.

“(살후 1: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 시니….”


공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받은 환난에 대해 갚아 주시고, 보상해 주십니다. 

그것이 성경 여러 곳에 나옵니다. 

■ 어떤 구절들에는 상주신다고 하고, 

■ 어떤 성경에선 면류관 주신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 오늘 본문에는 안식으로 갚으신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에서 안식은 단순히 “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원래 뜻은 “풀린다. 평안하게 편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안식을 relief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땅에서 꼬인 일들을 풀어주시고, 나를 얽매고 있던 고통 거리를 풀어주시고, 나를 해방해 주시고, 나에게 안식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어려움이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빈정거림을 받을 수도 있고, 사역하는 것 때문에 오해나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그런 때에 주님이 안식 주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주님의 안식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여,

저도 엠마오 제자들처럼 고난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고난과 환난 앞에 담대해 서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또한, 고난 뒤에 주실 안식을 사모하오니, 속히 안식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alDYURDa2q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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