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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9/23 몬 1장, “1장 오네시모” Publish on December 09,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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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6회 작성일 23-12-0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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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빌레몬서를 묵상하겠습니다.


빌레몬서는 1장밖에 안 되는 짧은 성경입니다.

구약의 오바댜, 나훔서, 신약의 빌레몬서, 요한2서, 요한3서, 유다서처럼 한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 4권 중 한 권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이기도 합니다.


빌레몬서에는 바울, 빌레몬, 오네시모가 주로 등장합니다.

세 사람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오늘은 주로 오네시모의 입장에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지역 사람입니다(빌 4:9).

종을 거느리고 살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아마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행 19:9~10).

“빌레몬”은 바울이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입니다.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한다는 말은 골로새 교회가 빌레몬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정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는 골로새 교회의 핵심 구성원입니다.

“자매 압비아”는 빌레몬의 부인이고, 그다음 언급된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인 것 같습 니다.

특히, 아킵보가 바울과 “함께 병사 되었다”고 한 것은 아킵보도 목회자란 말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초대 목사는 에바브라디도였는데, 지금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습니다.

에바브라디도의 후임으로 아킵보가 골로새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교회를 개척했고, 아들은 그 교회의 목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당시엔 교회 개척도, 목회도, 너무나 큰 희생과 섬김이 요구되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아킵보에게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골 4:17)”고 격려했습 니다.

온 가족이 함께 충성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미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따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에게도 개인적인 편지를 따로 썼습니다.

(두 편지를 한꺼번에 발송했으리라 추측합니다.)

그것도 친필로 씁니다.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몬 1:19).”

상당히 특별한 편지입니다.

왜 바울은 이렇게 특별한 편지를 썼을까요?


그것은 “오네시모” 때문입니다.

오네시모와 두기고는 골로새서를 골로새 교회로 전달한 일꾼들입니다.

(골 4: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 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는 바울이 상당히 신뢰하는 동역자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과거가 있는 남자입니다.

그는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노예제 사회였기 때문에, 노예가 상당히 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예가 도망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더욱이, 오네시모는 로마까지 도망갔으니, 최소한 로마까지 갈 경비도 주인에게서 훔쳤을 것입니다.


그의 주인이 빌레몬입니다.

빌레몬은 신실한 성도였으니, 노예인 오네시모에게도 친절히 잘 대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주인을 배신하고, 손해를 입히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다가 1차 수감되어 있는 바울을 만났고, 복음을 들었고,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감옥에서 나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주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씁니다.

오네시모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1. 무익에서 유익으로

(몬 1:11)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오네시모는 유용한(useful) 이란 뜻입니다.

당시 노예들에게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름만 유용(useful)이었고, 전혀 무용(useless)했습니다.

아재 개그를 하자면, 이름은 “유용”인데, 주인의 돈을 “유용”했습니다.

하지만, 전에는 무익하고 쓸모없었는데, 이제는 유익한 자로 바뀌었습니다.

복음이 그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는, 다시 에베소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빌레몬에게 돌아가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노예가 도망치다 잡히면 사형이었습니다.

에베소로 돌아갔다가 빌레몬이 용서해 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빌레몬에게 갔습니다.

당시에 에베소와 로마까지 거리는 엄청나게 먼 여행길이었습니다.

가지 않는다면, 평생 마주치지 않고 살수도 있습니다.

로마에서 충분히 사역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울이 가라고 해도, 오네시모 본인이 못가겠다고 하면, 억지로 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에게 돌아갑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오네시모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변화되었고, 그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겨내었고, 사랑을 실천하러 나아갔습니다.


2. 섬김

(몬 1:12)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몬 1:13) 저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오네시모는 바울의 심복이 되었고,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심복”은 의역이고, 직역하면 “심장”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심장처럼 친밀하게 여겼습니다.

“(몬 1: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바울을 대하듯 오네시모를 대하라고 합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이토록 아낀 것은 그가 변화된 모습이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는 그가 바울을 섬기는 모습에서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감옥에서 섬기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신실하게 잘 감당했습니다.

변화는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예수님 믿고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돌아봅니다.

제 입술이, 제 말이, 제 행동이, 저의 적용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돌아봅니다.

예수님 믿고 말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성도들에게, 가족들에게 눈에 보이는 실천으로 사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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