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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11/23 히 3-4장, “4장 은혜의 보좌” Publish on December 12,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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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7회 작성일 23-12-1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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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히브리서 4장을 묵상하려 합니다.


당시 히브리 성도들은 두 가지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의 불같은 박해와 기독교를 떠나서 유대교로 되돌아오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처음엔 잘 견뎠지만, 핍박이 장기화되면서 견디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많은 이들이 낙심하기도 했고, 믿음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런 어려움 중에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쓰였습니다.

그 내용은, 

첫째, 예수님을 믿으라. 예수님이 누구인지 바로 알고 바로 믿으라. 

둘째, 핍박받는다고 물러서지 말고, 믿음을 잘 지켜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믿음을 잘 지켜 나갈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이 16절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오늘은 16절을 중심으로 어떻게 은혜의 보좌로 나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큰 대제사장 예수님

히브리서 기자는 제가 믿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반복해서 얘기합니다.

앞에서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천사보다 우월하고(1-2장), 모세보다 우월하다고 했습니다 (3-4장). 

또한, 예수님은 대제사장 아론보다 우월한 큰 대제사장입니다

2:17과 3:1에서는 예수님을 그냥 대제사장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3:14에서는 “큰” 대제사장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중에서 가장 큰 대제사장이란 것입니다. 

그 어떤 대제사장과도 비교될 수 없는 큰 대제사장이란 말입니다. 

대제사장의 역할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은 저의 중보자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짐승의 피를 흘려 죄를 대속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흠 없는 제물이 되셔서 저 죄를 대속했습니다.  

그래서 그 대속의 결과로 제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배드릴 때, “주의 보좌로 나아 갈 때에 어떻게 나가야 할까?”하는 가스펠송 가사를 자주 떠올립니다. 

그때마다 “자격 없는 내 힘이 아닌, 오직 예수님의 보혈과 사랑을 힘입어 나아갑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2. 은혜의 보좌

1) 보좌는 왕이 앉는 좌석(의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대제사장이 아니라, 왕 같은 대제사장입니다.

왕과 대제사장을 겸직합니다.

왕은 보좌에 앉아서 나라를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립니다.

그래서 그 보좌는 공의(심판)의 보좌이기도 하고, 사랑(은혜)의 보좌이기도 합니다.

죄인들에게는 심판의 보좌이지만, 성도들에게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큰대제사장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당하신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나갈때 마다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2) 보좌는 성막의 시은좌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막의 지성소 안에 법궤가 있습니다. 

그 법궤 덮개는 두 천사가 날개를 맞대고 있는 형태(모습)입니다.  

그 덮개를 “속죄소”라 부릅니다.

법궤의 다른 이름이 있는데, 언약궤입니다. 

그 언약궤의 덮개는 “시은좌”라고 부릅니다.

시은좌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보좌라는 뜻입니다.

똑 같은 것이지만, 이름이 두 개(속죄소, 시은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1차례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의 속죄 행위가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속죄소이고요.

속죄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기에, 시은좌입니다.


3. 어떤 문제에 대해 은혜를 입을 수 있을까요?

모든 문제입니다. 

제가 죄 문제로 고통할 때, 죄 사함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여러 가지 문제로 염려할 때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수 있습니다. 

성도들 앞에선 그럴싸하게 보이려 노력하지만, 실은 저는 참 약한 존재입니다.

저는 저의 죄악된 본성이 노출되고 죄를 지을 때 절망하고 괴로워합니다. 

또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슬퍼하고, 낙망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 정욕과 유혹으로 쓰러질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저의 연약한 것까지 전부 다 아십니다. 

다 체험해 보셨기 때문입니다.

저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 때문에 오히려 불쌍히 여기십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동정한다는 것은 단지 불쌍히 여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지를 동정한다는 식의 느낌은 아닙니다.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공감이라는 표현과 가까운 느낌입니다.  

그래서 시험받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시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동일하게 시험받으셨습니다.  

인간들이 받는 모든 시험들을 실제로 받고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낮아지신 동안에 많은 시험을 받으셨고, 십자가의 고난도 인내하셨 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공감하시는 것입니다. 

내 일처럼 같이 아파하시고, 같이 안타까워 해주시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긍휼하심과 돕는 은혜를 체험하고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CR0OT2Sa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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