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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12/23 히 5-7장, “5장 큰 대제사장” Publish on December 13,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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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8회 작성일 23-12-1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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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히 5장을 묵상하겠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1-10:18)과 믿음(10:19-13장)이란 주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선지자와 천사와 모세와 아론보다 더 우월한 분이다.

2) 그러므로, 핍박에 지지 말고, 예수님을 끝까지 믿자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주제(예수님이 누구인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제사장 아론보다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즉, 가장 위대한 “큰”대제사장이란 것입니다.

분량 면에서도, 대제사장이란 부분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4-10장).

예수님이 대제사장이고(4:14-7장), 새 언약의 중보자이고(8장), 온전한 희생 제사를 지내 셨다 (9-10장)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구약 제사 제도(제사장과, 제사, 제물 제도)가 예표하던 것의 실체이며, 완성이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희생제물 되셨다는 것은 복음서나 바울 서신에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구약 제사를 더욱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설명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물 되신 것을 훨씬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온전한 대제사장이라는 주장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특히, 멜기세덱 제사장의 반열을 따른다는 것은 신약에서 처음 등장하는 주장입니다(5:6, 10, 11).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등장합니다.

살렘의 왕이요 제사장이었는데,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고, 축복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잠깐 등장하고, 휙 사라졌습니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중간만 있습니다.


그런데 시 110편에서 메시아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으로 등장할 것이 라고 예언합니다.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참고: 110편 1절은 메시야가 하나님 우편에 앉는 존재, 즉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하는데요.

4절은 그 왕이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즉 왕과 제사장을 겸직하는 존재라고 예언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 베드로는 우리 성도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메시아가 누구인지 잘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메시아의 존재됨이 메시아를 믿는 사람들에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시편110편에서 예언된 대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 아론의 서열(모세 시대에 주어진 율법에 의해 세워진 서열)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예물 바친 멜기세덱 제사장의 서열(율법보다 훨씬 전에 생긴 믿음의 조상)을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멜기세덱의 서열(아브라함 시대)을 따르는 제사장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율법의 권위(모세시대)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중보 사역이 더욱 확고하게 증명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본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어떤 대제사장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1. 인간의 연약을 체휼하는 대제사장 

“(히 5:2) 저(대제사장)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히 5:3)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원래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존재입니다.

백성들을 이끌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 대제사장은 자기 자신도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속죄일에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자기 자신을 위한 속죄부터 하고나서, 백성의 죄를 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 대제사장은 다른 백성들을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도 똑같은 연약에 싸여 있는 존재이고, 자기도 똑같은 처지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히 5:2).


예수님도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연약함을 동정해 주십니다(히 4:15). 

시험받고, 연약함을 체험하셨다는 점에서는 인간들과 똑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으셨다는 점에서는 우리 인간들과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그 체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긍휼의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 시대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은 죄가 없다고, 의인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들은 인간의 죄인 됨과 한계를 보여주고, 메시아가 오셔서 그 죄를 해결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소망케 해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오히려 자신이 의인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메시야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크게 불러일으키는 행위였습니다.

이들은 독사의 자식들이요,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판받았습니다.


저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저는 제가 의인인 척 위선 떨진 않는지…

저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연약도 감싸 안아 주는 사람인지… 

아니면, 내로남불의 정신으로 저의 연약함에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남의 연약에 대해 선 너무나 엄격하지 않는지….

제가 연약하듯, 다른 사람들도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저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너그러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제사장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임명 받아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마치 멜기세덱이 아론의 반차와 상관없는 것처럼…)

그러나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더욱 온전한 제사장이셨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대속할 뿐 아니라, 중보하는 존재인데요.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로 소원을 올려드렸고, 그 경외하심을 인해서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 성육신하기 전에는 당연히 하나님이셨고,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에도 하나님이셨고, 부활 승천하여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지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이십니다(참 하나님).

* 그러나, 동시에, 사람의 몸을 입고 사시는 동안 예수님은 100% 완벽하게 사람이셨습니다(참 사람).

그 육체의 연약함으로 때로는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물 한 사발을 청하셔야 했고, 갈릴리 바다에서는 배 안에서 피곤하여 곯아떨어지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기를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으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앞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이셨을까요?

그러나 그때에도 주님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냥 기도한 게 아니라,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눈물 흘리며 우시면서 기도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절규하셨고, 신음하셨고, 부르짖으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조금도 위선하는 마음 없이, 하나님께 솔직히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고, 진솔하게 기도하셨 습니다.

그리고 그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으셨습니다(5:7).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십자가의 잔을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시켜 주시고, 보좌 우편에 앉게 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경외하심이란 겸손과 절대적인 순종(복종)을 의미합니다.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 비로소 대제사장으로서 온전한 자격을 구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해도, 십자가 고난 앞에서 자기를 꺾어 순종하는 법을 배우셨던 것입니다.


그 방법이 기도였습니다.

눈물과 통곡으로 드리는 기도와 간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배웁니다.

하나님께 솔직하면, 사람에게도 숨길 것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되면, 사람에게 간절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고 나면, 사람 앞에서는 울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고 나면, 사람들에게 고함지르지 않게 됩니다.


저도 순종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워 나가기 원합니다.

기도로 순종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기 원합니다.

때로는 울고, 부르짖는 것이 거북하고 싫을 때도 있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다시 기도의 자리로, 눈물의 자리로 나아가야겠습니다.

그리고 힘껏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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