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24 벧전 1~5장, “2장 왕같은 제사장”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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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17/24 벧전 1~5장, “2장 왕같은 제사장” Publish on December 17,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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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4회 작성일 23-12-1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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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벧전 2장을 묵상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사도 베드로가 이방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1:1-2).

베드로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실루아노(실라)가 대필했습니다(5:12).

아마 베드로가 마지막 사역지인 로마에 도착하고 얼마 후에 썼다고 추정합니다(AD 64년). 

로마 대화재(AD 64년) 이후에, 네로의 박해 아래 있는 성도들을 위해 쓴 편지입니다 (1:6-7).

이 박해를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불로 연단하면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하다”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7절). 

시험과 시련을 겪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다가올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2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시련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 인지에 대해 말해주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우리가 사람들에게는 불같은 핍박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이렇게 고귀한 존재로 여김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힘들게 고생하고 있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이렇게 고귀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하나님께 어떤 대우를 받는 존재인지)를 알 때, 우리가 받는 고난을 이겨나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우리의 정체성을 4가지로 말하는데요. 

그중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란 단어에 눈이 갑니다.

왕 같은 제사장은 왕과 제사장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성도가 왕이요,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왕 같은 제사장이 가진 “왕적인 신분(identity)”에 집중해서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인간은 왕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6일째 인간을 왕이신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문화명령을 통해 이 땅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아담에게 이 땅을 통치하는 역할, 즉 왕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해 그 왕권을 상실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그 왕권을 회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신 사건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분과 존재와 사명도 회복시키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제가 왕으로서 다스리는 사명도 회복되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계시록 5장에 가면, 천사들이 성도들이 왕이요 제사장이라고 노래합니다. 

“(계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제사장인데, 왕입니다.

● 신자는 세상의 영적인 왕입니다.

● 신자는 주님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리며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는 더 이상 사단에 의해, 세상 권세에 의해, 환경에 의해 억눌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쫓기고, 불안하게 사는 존재도 아닙니다.


저도 오늘 하루를 살면서, 내가 왕이란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왕으로서의 위엄과 영광과 자신감을 맘속에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세상을 통치하는 신분과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 있게 용기 있게 살기 원합니다.


2. 그러면, 저는 어디에서 이 왕권을 소유해야 할까요?

1) 저의 마음속에 이 왕권을 소유해야 합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이것을 주님의 화법으로 바꾸면, 팔복이 됩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의 소유자가 됩니다. 

소유자는 또한 통치자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지금 이 땅에서 일차적으로 왕 노릇 할 것은 저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왕은 백성을 다스립니다. 

제 몸과 생각이 저의 백성입니다. 

저는 제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저의 영토가 확장되도록 단호하게 저의 마음과 생각을 바로 하고, 입술로 시인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이 영토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정복하신 귀중한 영토입니다. 


제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 안 된다는 생각, 못한다는 생각, 부정적인 생각이 제 마음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음란하고 더러운 생각, 어두운 생각, 불법적인 생각, 악한 생각, 못된 생각도 제 마음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몰아내고, 제 맘속에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해야겠습니다. 

제 맘에 천국(하나님 나라)을 선포하고, 제 맘을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리기 원합니다.


이것을 선포해야 하는데, 매일, 매 순간 선포해야겠습니다.

제 맘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으므로, 순간순간 이 왕권을 선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과 생각에서 이 왕권을 부지불식간에 빼앗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저는 제 감정의 왕이 되어야 합니다. 

저의 감정도 통치해야 합니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입니다. 

감정은 인간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머리로 이해되어도, 가슴으로 용납되지 않으면, 소용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감정이 사람을 지배한다면, 신앙은 감정을 지배해야 합니다.

저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저의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 제 속에 있는 패배의식과 좌절감을 다스려야 합니다.

● 두려움과 염려도, 기쁨과 즐거움도 저의 신앙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신앙이 저의 감정을 지배할 때, 제 감정이 새롭게 되고, 제 마음도 새롭게 되고, 저의 인생도 새로워질 줄 믿습니다. 

저에게 우울한 마음이 생기고, 염려가 생기고, 두려운 감정이 생길 때, 미워하는 감정이 생길 때, 신앙으로 제 감정을 지배하고, 통치해야겠습니다. 

삶이 힘들고,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기고, 돈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신앙으로 통치하기 원합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저의 영토에 침략해 올 때, 이제는 제 감정에 선포해야겠습니다.

“너 우울한 감정아, 너 두려움의 감정아, 

하나님의 영토에서 썩 물러가라. 

이 땅은 하나님의 영토이고, 평안의 영토이고, 사랑의 영토이다.” 


감정을 통치한다는 것은 일종의 설득작업입니다.

시편 42편의 시인도 자신의 감정을 설득하려고 애썼던 것이 생각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5, 11, 43:5).”

시인은 자신의 영혼에게 낙망하지도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 바라라고 설득합니다.

낙망과 불안의 감정에 지지 말고, 이기고 극복하라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번이나 반복해서 말합니다.

감정을 설득한다는 게 한두 번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마음을 바꾸려면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해야 합니다. 

또한, 결심했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마음이 바뀔 수 있으므로,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어떤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감정을 흔들만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묵상처럼, 제 마음에 하나님께 위임받은 왕권으로 선포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물러가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을 설득했습니다.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제 마음과 감정을 통치하려고, 애쓰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묵상을 적용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오늘 더욱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쓰며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래서 그 통치 영역을 점점 넓혀 가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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