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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18/23 벧후 1-3장, "1장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Publish on December 19,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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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9회 작성일 23-12-1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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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벧후 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베드로후서는 베드로가 순교(AD 68년)하기 직전에 보낸 편지입니다(AD 66~67년?).

베드로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베드로후서를 쓴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네로 황제의 집권 말기(AD 64~68년)의 극심한 박해를 견디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는 편지입니다.


이때 베드로도 로마에 있었고,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벧후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이 “장막”은 육신의 장막을 의미하는 것이고, “장막을 벗어난 것”은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안다”는 것은 이제 곧 순교 당할 것을 감지하면서, 유언을 쓰는 심정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 시기에 로마 감옥에서 유언처럼 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떠난 후에라도(죽고난 후에라도), 성도들이 늘 기억하고 생각하길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벧후 1: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첫째,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고(3:3),

둘째, 진리를 부정하는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더 성숙한 신앙으로 갈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3:17-18).

오늘은 이 두 가지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

거짓 선생들은 재림을 의심하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이 확실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을 증거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변화산 사건을 떠올립니다(마 17:2, 막 9:2).

“(마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체험은 중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졌고, 그 말씀을 직접 들었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했습니다(요일 1:1).

사도를 충원할 때의 자격 조건도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행 1:21-22),” 즉 예수님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공생애 동안 경험했던 예수님의 모습 중에, 가장 위대한 경험이 바로 변화산 체험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상의 모습을 변한 것을 보고, 모세와 엘리야도 보고, 하늘의 음성을 듣는 경험보다 더 위대한 체험이 어디 있겠습니까?

“(벧후 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것은 제자 중에서도 3명밖에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런데, 19절에서 베드로는 더 놀라운 말을 합니다.

“(벧후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베드로가 직접 보고 들은 변화산 체험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벧후 1:20-21) 먼저 알 것은 경(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라고 합니다. 


저는 베드로처럼 변화산에서 재림하실 예수님을 경험치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더 확실한 예언인 성경은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가 생전에 읽지 못했을 성경도 읽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은 베드로가 순교한 후에 쓰였으니까요. ^^)

성경은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여러 번 말씀합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 천사가 재림을 예언했습니다(행 1:11).

바울도 재림을 말했습니다(살전 4:14).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계 1:7).


체험도 확실한 것이지만, 성경은 나의 체험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그럼, 이 성경을 통해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듣고 볼 수 있을까요?

“(벧후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등불과 샛별은 성경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저도 올해에 성경을 통독하고, 묵상하면서,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지식을 몇 개 더 얻는 것으로 만족할 순 없습니다.

그 깨달음을 저의 것으로 만들고, 삶에 적용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적용에는 4p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 적용은 개인적(personal)이어야 한다.

● 적용은 구체적으로 실천해야(practical) 한다.

● 적용은 현재 할 수 있어야(present) 한다.

● 적용은 실천 가능해야(possible) 한다.

저는 늘 제가 적용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적용의 원칙을 생각하면서, 적용에 좀 더 힘써야겠습니다.

그래서 재림하실 주님을 준비하는 삶을 살려고 애써야겠습니다.


2. 더 성숙한 신앙을 생각

베드로는 성도들이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고난을 견디며, 더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길 원했습니다.

즉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원했습니다(1:4).

“(벧후 1:5-7)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공급하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를 추가할 뿐 아니라,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라는 뜻입니다.


1) 믿음에 덕을 더합니다. 

믿음과 덕은 색깔이 좀 다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수동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덕은 선한 생각뿐 아니라, 행동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수동적인 모습(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덕)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2) 덕에 지식(gnosis, knowledge)을 더합니다.

신앙의 열정이 뜨거운 사람은 지식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지식을 추구하는 이는 신앙이 냉랭해지기 쉽습니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이 조화해야 합니다. 

냉철한 말씀의 지식과 아울러서 우리 심령 속에서 폭발하는 성령의 뜨거운 능력으로 충만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도 베드로가 강조했던 체험적인 앎(epi-gnosis, 에피그노시스, 1:3)을 추구해야겠습니다.


3) 또한, 경건도 형제 우애와 조화되어야 합니다. 

경건이란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깊고 좋은데, 형제들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또 반대로, 형제들과는 너무 잘 어울리고 친한데, 경건 생활에는 소홀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4) 또 형제 사랑(Philadelphia)과 사랑(agape)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형제 사랑(Philadelphia)이란, 말 그대로 나의 형제를, 또는 형제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agape)이란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두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내가 잘 아는 분들, 목장 식구들도 사랑해야 하지만, 내가 모르는 교회 성도들도 사랑해야 하고, 교회 밖의 분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형제 사랑과 교회 밖에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신의 성품들은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신앙으로 자라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제 신앙은 어떤지 돌아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 조화가 되고 있는지….

날마다 더 균형을 잡아가고, 조화를 이뤄나가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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