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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21/23 요이 1장, “1장 사랑과 진리” Publish on December 2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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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7회 작성일 23-12-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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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요이 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요한 서신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 유배에서 돌아온 뒤에 쓴 서신들입니다.

그래서 요한 일, 이, 삼서 모두 시기와 배경이 비슷하고, 내용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랑”과 “진리”와 “행함”은 세 편지 모두에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는 진리 안에 있는 자이고, 그 진리 안에 있는 성도는 사랑과 참된 지식과 기쁨 가운데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요한이서는 한 장밖에 안 되는 성경인데요.

내용은 “사랑의 계명 안에 거하라”(1~6절)와 “거짓 교사들을 멀리하라”(7~13절)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1. 거짓 교사

사도 요한이 편지 쓰던 당시에는 도미티안 황제가 박해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의 중요한 박해는 네로의 박해(바울, 베드로 순교)와 도미티안의 박해(요한 밧모섬 유배)입니다.)

물론,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독교는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단도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지주의(Gnosticism) 이단이 많았습니다.

쉽게 말해, “영”적인 “지”식(Gnosis(라틴어), Knowledge)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것이 영지주의입니다.


당시에 기독교가 성장했던 요인 중 하나가 순회전도자(성경 교사)들이었습니다.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 중에도, 순회 전도자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이들을 집으로 맞아들여 가르침을 받았고, 그들이 떠날 때는 여행을 위해 필요한 물품이나 경비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이단 사상을 가진 거짓 교사들도 순회하면서 그들의 사상을 전했습니다.

잘못하면, 성도가 거짓 교사를 후원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그런 거짓 교사들을 분별하고, 배격하라. 그들을 영접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라.”라는 것이 요한이서의 요지입니다. 


2. 참사랑

“(요이 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요한은 사랑의 사도입니다.

요한 서신에서만 사랑을 39절이나 언급했습니다.

요한이서에도 4번이나 언급합니다.

그런데 요한이 말하는 사랑은 진리(계명)와 짝을 이룹니다.

둘은 요한이서의 인사말에도 함께 나옵니다.

“(요이 1: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사랑 없이 진리만 말하는 것도 참신앙이 아니고, 진리 없이 사랑만 강조하는 것도 참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사랑하고, 분별하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성도들이 “(사랑의)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1:4).


3. 참사랑은 분별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분별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분별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엄마가 요리하는 칼을 달라고 떼쓸 때, 그 칼을 아기에게 줄 엄마는 없을 겁니다.

아기는 칼이 재미있어 보여서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그 칼은 아기가 가지고 놀기엔 위험한 물건인 줄 분별하기 때문에, 주지 않습니다.

아기가 원하더라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은 사랑도 진리의 잣대로 분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분별하다 보면 자연히 거짓 가르침도 분별하게 됩니다.

“(요이 1:6)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요이 1:7) (왜냐하면)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우리가 계명을 따라 사랑하고 진리를 분별하면서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거짓 교사들(미혹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거짓을 가르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거짓 역사와 미혹하는 자의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방법은 처음에 들었던 진리의 잣대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의 주장은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고,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사랑은 진리 안에서 분별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분별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도, 교회 안에도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 분별의 지혜를 주십시오. 


4. 분별하는 사랑은 법을 따르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요이 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요한은 참사랑은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라 합니다. 

즉, 성경의 진리와 가르침 위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서로 적당히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고, 서로 눈감아주고, 서로 챙겨주는 식의 태도는 참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우리가 남이냐!” 하는 식의 의리와 인정도 참사랑이 아닙니다. 

‘대세가 그러니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의 태도도 버려야겠습니다.

남들 다하는 세속적인 방식이라고 해서, 나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태도는 나를 보호할 수 없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늘 깨어 있으려고 애써야겠습니다.

혼란한 세상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5. 단호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요이 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요한은 거짓 교훈을 따르는 자들은 집에 들이지 말고, 인사조차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차단하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지키는 것에 대한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좀 가혹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관용해야 하지 않느냐,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잖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런 반문은 진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고, 그런 사랑은 진리를 지키는 일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 관용과 사랑은 참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깨닫고 의지적으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어떤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려고 애쓰기 원합니다.

나 자신에게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단호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진리를 공부하고 양 떼들을 먹여야겠습니다. 

거짓된 가르침과 듣기 좋은 세상 풍조로부터 양 떼들을 지켜야겠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는 종으로 살기 원합니다. 


(궁금한 분만 참고하세요.

<영지주의>

영지주의는 초대 교회 시기에 유행하던 철학적, 영적 경향이 교회 안에 들어와선 생긴 이단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잖아요?

그런데 영지주의는 “영적인 지식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영을 창조했지만, 육체는 악마가 창조했다고 합니다(이원론).

그래서 악한 육체에 갇혀 있는 영혼이 구원 얻기 위해서는 영적인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영육이원론, 천사숭배(신비체험), 가현설 등을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가현설은 “예수님은 참사람이 아니라, 신이 사람인척 가짜로 나타난 것이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십자가에서도 죽은 척 한 것이다”라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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