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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23/23 유 1장, “1장 영적 전쟁의 방법” Publish on December 23,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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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0회 작성일 23-12-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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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유다서 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유다서는 말 그대로 유다가 보낸 편지인데요.

성경에 유다가 여러 명 나오지요.

그중에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입니다.

예수님에겐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의 동생들이 있었습니다(막 6:3).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이고요.

유다서의 유다도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유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이지만, 본인을 예수님의 동생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1:4)”라고 부릅니다.

혹시 자기가 쓸데없는 주목을 받거나, 높임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적으론 자기의 형이지만, 영적으론 자기의 주님임을 분명히 고백합니다.

(참 공과 사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너무나 겸손하고, 바른 신앙임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생애 기간 동안, 오랫동안 예수님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믿은 후에는 굉장히 안정적인 신앙인이 되셨습니다.

유다서도 한 장짜리 성경이지만, 내용은 상당히 깊이가 있습니다.

유다서의 내용은 베드로후서와 닮았습니다.

특히, 유 1:4~18과 벧후 2:1~3:3은 상당히 비슷합니다.


유다가 편지를 기록한 이유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유 1:3-4)”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로 스며들고 있는 이단의 공격에 대항해서 싸우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편지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영지주의 이단이 극성이었는데요.

영지주의는 육체는 악하고, 영혼만 참되다는 이원론에 근거해서, 영적인 지식을 가져야 구원받는다는 주장을 하던 이단입니다.

악한 육체를 억누르려는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영혼이 구원받았으니 육체는 타락해도 괜찮다는 향락주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단과 싸우는 싸움은 영적 전쟁인데요.

그럼,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1. 자신을 세우는 싸움입니다.

“(유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유다는 성도들이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고 합니다.

이 믿음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입니다.

여기에서 “거룩한”이 최상급 형용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최고로 거룩한 믿음(your most holy faith)입니다.

최상급을 썼다는 것은 믿음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귀신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도 예수님을 알고, 믿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지도 않고, 주인으로 따르지도 않습니다.


저는 최상의 믿음으로 주님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참된 믿음은 거룩함을 사모합니다.

오늘도 가장 거룩한 믿음으로 고백하며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주님의 거룩함을 사모하며, 닮아가고 싶습니다.


2. 자신을 지키는 싸움입니다.

“(유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진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유다는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기도 없이는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요즘 기도해야 한다는 도전을 더욱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기도 시간도 늘리고, 깊이도 더 깊이 기도하길 원합니다.

더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번 성탄에 아들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묵상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애써야겠습니다.


3. 기다림의 싸움입니다.

“(유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이 싸움은 자신을 세우고, 지키는 싸움일 뿐 아니라, 기다리며 싸우는 전쟁입니다.

기다림은 참 어렵습니다.

기다림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무엇인가를 기다릴 때가 있는데, 기다릴 때마다 매번 힘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전쟁은 예수님의 긍휼(위로부터 내려오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긍휼의 궁극적인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이지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라나타”라고 인사했습니다.

마라나타는 “주님이 오실 것이다, 주님 오시옵소서”라는 아람어입니다(고전 16:22).

이 인사말은 초대교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인사말이 되었습니다.


이번 성탄에는 아기 예수님의 초림뿐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저도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 따라 주님 다시 오실 것을 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주님을 기다리며, 찬양하며 살기 원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땅의 모든 끝 모든 족속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RkZeVauqn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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