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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24/23 마 1-2장/눅 2장, “마 2장 왕을 찾는 사람들” Publish on December 28,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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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7회 작성일 23-12-28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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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Christmas Eve이고, 내일은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을 생각하며 마 2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성탄절은 말 그대로 하늘보좌에서 이 땅으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사랑하심과 순종하심을 기억하는 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배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먼 땅에서 왕의 탄생을 축하하며 경배하러 찾아온 사람들이 나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장면을 묵상하겠습니다. 


I. 헤롯왕 때에

“(마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예수님의 오심을 묘사하는 구절 중에 “헤롯왕 때에” 란 표현만큼 당시 상황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말이 없을 것입니다. 

헤롯왕은 에돔 사람인데, 당시에 로마로 부터 유대 지역을 위탁받아 다스리던 분봉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헤롯은 한마디로 엄청난 폭군이었습니다. 

얼마나 폭군이냐 하면, 자기 부인과 장모를 처형했고, 아들도 3명이나 처형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는 베들레헴 지역에 2살 이하 아기들을 몰살하는 천인공로할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잔인무도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시는 사건을 기록하면서, 당시 왕이 헤롯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1) 마태는 1절에서 두 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헤롯왕과 예수왕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실 때, 그 땅은 폭군에 의해 통치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왕, 폭군이 다스리는 그 땅에 새로운 왕이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2) 헤롯의 통치아래 있던 백성들은 얼마나 그 시름이 깊었겠습니까? 

로마와 헤롯의 이중 통치에, 무거운 세금에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당시 국민의 대다수가 빈민층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이 땅을 다스리는 것들로부터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 땅의 물질 만능주의가 우리를 압제하고, 외모 지상주의가 우리를 억누르고, 스펙을 원하는 세상에게 기가 죽습니다.  

이 세상은 억울하고 분한 일이 가득한 세상이고, 한 많은 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밀림 같은 이 세상에 기쁜 소식이 선포되었습니다.

새로운 왕이 나셨습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1절)” 라는 구절은 바로 두 왕의 통치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헤롯왕과 예수님입니다. 


나는 어떤 통치를, 누구의 통치를 원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말로는 주님의 통치를 원한다고 하지만, 주님의 통치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진짜로 원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나의 마음을 살펴봅니다. 


II.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동방박사들이 이 유대인의 왕을 찾기 위해서 먼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 왕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외쳤습니다.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한두 사람에게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온 성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결국 온 성이 소동했고, 헤롯도 알게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은 결국 아기를 찾았습니다. 

박사들은 별이 머문 집에 들어가서 아기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추구함이 있어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을 찾고 다녔듯이, 나도 예수님, 내 인생의 통치자를 추구해야 합니다.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물론, 저도 오래 교회 다녔고, 한참 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한번 만났던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말할 때, 오늘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고 하잖아요?

동일하게, 나는 오늘도 예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예전에 한번 만났던 것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매일, 매순간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인환아, 오늘도 예수님을 맘속에 모시고 있니? 

주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있니? 

주님을 경배하기 원하니?

어떤 예물을 드리고 있니?”


모든 성도는 삶의 모든 순간에 주님의 통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 이득이 될 때나 손해가 될 때나... 

(이러니까, 이거 결혼식 축하멘트 같은데요.... ^^;;) 

암튼, 우리 삶의 조건과 상황에 상관없이 항상 주님의 통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III. 세 가지 예물

“(마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박사들은 왕을 경배하고 예배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동방에서 얼마나 먼 길을 왔겠습니까? 

어림잡아도 약 1,600Km나 되는 거리를 낙타를 타고, 또 걷기도 하면서 찾아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겠습니까? 

학자들은 40일 정도 여행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경비를 들였겠습니까?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거기다가 오면서 얼마나 위험한 일을 많이 겪었겠습니까? 

그리고 드디어 아기 왕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 먼길 동안 소중히 간직했던 몰약과 황금과 유향을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왕으로 나신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그런 희생과 헌신을 감수했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이런 헌신이 깃들인 예배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참으로 희생하고, 수고하고, 손해보고, 헌신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오늘 나는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며 살려면, 예배하는 인생이 되려면,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해야 합니다. 

시간을 내야하고, 돈도 좀 써야 하고, 피곤한데도 힘을 내야 합니다. 

가끔은 손해도 보고, 위험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런 헌신이 충분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경배하는 삶의 자세와 예배의 자세를 다시 세워나가길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zt5CNNr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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