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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2/29/23 계 14~16장, “14장 십사만 사천의 찬양” Publish on December 29,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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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8회 작성일 23-12-2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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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계시록 14장을 묵상하겠습니다.


계시록 중간 부분은 지상에서 겪는 환난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 천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성도들이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데요. 

오늘 14장에서도 천상의 모습이 나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이 찬양하는 장면입니다. 

십사만 사천의 무리는 7장에서 나왔는데, 다시 등장합니다.


I. 어린양

1) 이 환상은 어린양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이 환상에서 요한이 가장 먼저 바라본 것은 어린양이었습니다.

“(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14장의 어린양은 진짜 어린양입니다. 

세례 요한이 보고 외쳤던 하나님의 어린양이요(요 1:29, 36),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찬양받으시는 어린양입니다(계 7:10).

진짜 메시아입니다.


왜 “진짜 어린양”을 강조하냐 하면, “가짜 어린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3장에서는 어린양을 흉내 내는 “가짜 어린양”이 있었습니다.

“(계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이 짐승은 어린양 흉내를 내면서, 자신이 메시아인 양,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려 했고, 짐승의 표를 받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참 신자들이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14장에서 요한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어린양 예수님”이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저의 가장 큰 관심은 어디에 있는지 돌아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여전히 저에게 가장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잘되는 것, 저의 감정, 저의 안위에 가장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세상의 중심이 나인 양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제 저를 바라보느라 숙이고 있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주님을 보아야겠습니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제게 관심이 많다 보니, 혹시 제가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납니다.

목사나 교회 직분자들은 늘 가짜 메시아가 되려는 유혹을 벗어나려고 조심해야 합니다.

저도 이 부분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께 가야 할 관심을 제게 돌리게 하길 원치는 않는지.

주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제가 슬쩍 받기를 원치 않는지.

주님께 드려야 할 사랑을 제가 슬그머니 받으려 하진 않는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고백했던 세례 요한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요 3:30).


2) 어린양이 십사만 사천과 함께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의 무리가 어린양 곁에 서 있습니다.

이들은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모든 성도입니다.

13장 끝에는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았는데, 십사만 사천의 이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이들은 새 노래를 부릅니다(12:3).

이들은 지금 어린양과 함께 있습니다.

영원한 임마누엘을 누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빌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바울은 천국에 가면, 예수님을 제일 먼저 뵈올 것이고,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거할 것이라는 확신과 사모함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비슷한 문맥으로, 영국의 종교개혁자로서 언약 신학을 확립했던,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제가 천국에 있을지라도 주님이 안 계시면 그곳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제가 지옥에 있을지라도 거기에서 주님을 모시고 있다면 그곳이 제게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야말로 제가 바라는 천국이기 때문입니다(O my Lord Jesus Christ, if I could be in heaven without Thee, it would be hell; and if I could be in hell, and have Thee still, it would be heaven to me, for Thou are all the heaven I want).”


그럼, 이 땅에서 어떻게 천국을 누리며 살까요?

이왕 러더포드를 인용했으니, 그가 했던 말을 한 번 더 인용하면요. 

“당신의 느낌과 경험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으시오. 그리스도가 당신의 반석입니다(Believe God's love and power more than you believe your own feelings and experiences. Your rock is Christ).”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방법을 김명선 간사님이 부른 찬양 가사로 표현하면, “시선”으로 요약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꾸게 하네….”


3) 이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 있습니다.

원래 시온산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모리아산입니다. 

나중에 그곳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요, 예배의 처소였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산 시온에서 메시아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지금 계시록에 나오는 시온산은 당연히 땅에 있는 시온산이 아니라, 하늘 환상 속에 나오는 시온산입니다.

저도 영적인 시온산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더 깊은 교제를 누리기 원합니다.


II. 십사만 사천

십사만 사천이 어떤 무리인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계 14:1)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1)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을 쓴 자들

앞의 13장에서는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3:16).

그러나 십사만 사천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있습니다. 


고대에 짐승에게 표(도장)를 찍었는데요.

대부분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도장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도장을 받은 자는 어린양과 하나님의 소유란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가시적이거나 물리적인 표시는 아닙니다. 

그러나 도장은 제가 누구에게 속하였는지, 그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누구에게 충성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표시입니다.

저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요.

이것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벧전 2:9)”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특별한 소유인지, 이사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했습니다(사 49:16). 

저도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 되고, 은혜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2)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들

이들은 신앙의 정절을 더럽히지 않은 깨끗한 자들입니다.

a. 당시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 제국의 압제에 타협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들입니다.

이 무리 중에는 그 정절을 지키기 위해, 손가락, 손목을 잃은 분도 있고, 굶은 분도 있고, 세상의 지위와 명예를 포기한 분도 있고, 목숨을 잃고 순교하신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숨은 잃었어도 신앙은 지켰습니다.

신앙을 지켰기에 천국에서 더 큰 영광과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b. 이것을 성경에서 말하는 관점으로 보면,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의 이미지와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거룩한 전쟁(영적 전쟁)을 수행하며 세상적인 욕심과 욕망과 싸웠던 전사의 이미지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사람이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이요, 음녀인 바벨론과 음란한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17:1)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라고 하셨습니다.

험한 세상 속에서 사역하는 것이 양이 늑대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같이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라도 지혜롭고 순결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c. 이런 말씀들을 저에게 적용하면, 돈과 성공과 욕심과 욕망을 우상으로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거절하고, 그것으로 저를 더럽히지 않은 순결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나 영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저의 우상들을 내려놓고, 제 마음부터 청결하게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청결한 말과 행동을 하며 살려고 애써야겠습니다.


3) 어린 양을 따라가는 자들

계시록의 어린양은 어린양이기도 하지만, 목자이기도 합니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어린양이 목자 되셔서 인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양 목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따라가고,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이렇게 따라가는 자들을 제자라 부릅니다. 

예전에 읽었던 “팬인가, 제자인가 (Not a Fan, Kyle Idleman 지음)”가 생각이 납니다.

주님을 연예인 보듯 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아이돌에게 열광하듯 환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제자가 되어 따라가야 합니다.

인생을 걸고 따라가야 합니다.

저도 오늘의 일상 속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 되기 원합니다.


4)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

“(계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이 무리가 거짓말하지 않고, 흠이 없는 것도 단지 윤리적으로 고결한 삶을 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본래 타고난 성품이 착하고 양심적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앞에서 십사만 사천의 무리가 팬이 아니라, 제자들이라고 했는데요. 제자들은 스승을 따르는 자들이잖아요.

예수님이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처럼,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셨고 그의 입에 거짓도 없으셨습니다(사 53:9).

그래서 십사만 사천의 무리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따라가다 보니, 그 형상에 영향 받아서 거짓말도 하지 않고, 윤리적으로도 바로 살고, 말에도 실수가 없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저를 돌아봅니다.

거짓을 멀리하려고 애써야 겠습니다.

오늘도 더욱 흠이 없는 자로 살려고 애써야겠습니다.

그리고 착한 행실로 빛과 소금이 되려고 애써야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답게 살려고 애써야겠습니다.

종말에 십사만 사천의 무리에 속하여 찬양할 그 날을 기대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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